아마도 1987년 (후반기) 쯤인가?
나는 모 교회에서 잘 나가는 교회 오빠였다.
충남 전 지역에서 ㅎㅎ
뭇여성들의 인기를 한 몸에 받았다.
내 인생에 남을 역사적 사랑의 기록이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열심히 교회 성가대를 하고 있는데, 연기군(현ㅡ 세종시) 합창단에서 러브콜이 들어왔다. 정확히 70년 역사를 가진 조치원 (YWCA) 모임 장소였다.
합창단을 창설하니, 핵심 멤버로 들어오라는 것이었다. 사실 나는 지금도 노래는 썩 못하지만 악보만큼은 읽을 줄 아는 능력을 가졌기에 두말없이 합창단 부름에 응했다.
당시는 지금처럼 여가 선영이 없었기에 연기군에 노래 잘하는(전공자 포함) 사람들이 넘쳐났다. 사람을 가려 충남 합창대회를 나갈 정도였다. 지금도 그렇지만 나는 여성에게 빠지면 지고지순한 면이 있다. 상대방이 발로 차지 않으면 끝까지 순종하고 책임을 진다는 것이다.
정확히 1989년 어느 봄날에 합창실에서 한 여인을 보았다. 베이스를 담당하는 나였기에 엘토를 하는 그 여인의 뒷모습만 쳐다보았다. 그녀의 장점이 있었는데 음악전공자 못지않게 노래실력이 뛰어났다. 그렇다고 나에게 있어 그게 별 대수인가.?
여자를 봐야지..ㅡㅡ
그녀는 노래실력 못지않게 뒤태가 아주 죽여주는 몸매였다. 사실 나는 연애는 해도 결혼을 하지 않는 독신주의를 신봉했었다. 그런데 맘에 드는 여자가 나타났으니..ㅡ ..
저걸 어떻게 꼬드겨?
솔직히 그녀의 S라인은(와)였지만 앞모습 얼굴은(헉)이었다. 수많은 여성을 사궜던 나였지만, 왠지 그녀는 이상모를 매력이 있었다.
내가 세종시에서 최고로 꼽는 장시종 시인님. 이바돔 레스토랑보다 오래된 하니 레스토랑에서 늦은 봄날에 그녀를 붙들고 고백을 했다.
나! 너 좋아해,
그녀는 그냥 고개만 숙였다.
겨우 21살 먹은 처녀였으니까,
그리고 그해 #시월애 마지막 날 (10월 31일) 내 자취방에서 그녀를 덮쳤다. 순전히 술기운이었다. 그래도 일말의 양심은 있었나.?
그녀를 28년을 모시고 살고 있다. 후회는 없지만 당시 양다리 걸쳤던 S형(에스가 지겹다)이 가끔 그립고 보고 싶다.
대전 MBC 수습 아나운서였다.......
신기하게도 30여 년 만에 처음이다.
내 집사람의 생일이 하필 오늘이다.
오늘 오봉아ㅡ문팬 ㅡ사적 모임이 세 군데지만 다 거절해야겠다. 가끔 짠하고 불쌍해지는 마누라가 쇠고기를 좋아한다. 처제가 말하길, 형부 오늘 제가 팍팍 쏠게요.
어디로 도망가기? 있기ㅡ..?없기 ㅡ..ㅎㅎ
이렇게 시월의 마지막 밤은 흘러갈 것이다..
'나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족과 함께 집사람 생일파티를 하다..ㅡ (0) | 2018.11.01 |
---|---|
임효림 스님ㅡ 출판기념회 및 토크쇼~~ (0) | 2018.11.01 |
세종시 지하차도- 과속카메라를 철거하라. (0) | 2018.11.01 |
지인의 출판기념회를 다녀오면서~~ (0) | 2018.10.28 |
글을 다듬고 사무실에서 낮잠을 청한다. (0) | 2018.10.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