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장모님 표, 김장 김치를 담다.

헤게모니&술푼세상 2020. 12. 6.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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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 전부터 (토요일 12/5) 처갓집 식구들과 우리 집 마당에서 김장 토크쇼를 하기로 했다. 가족끼리 다 같이 모여 오손도손 김장 담그기를 약속했던 것이다. 그러나 수그러지지 않고 더욱 확산되어가는 코로나 앞에 김장 토크쇼는커녕, 세종시에 거주하는 처갓쪽 친척들만 모여 김장을 하기로 급변경을 했다. 다만 김장날에 오지 못하는 사람들은 직접 우리 집 문 앞에 와서 김장김치만 받아가는 걸로 정했다.

이른 아침부터 장모님의 진두지휘 아래, 우리 집 세명/ 아들/ 집사람/나/ 처제/ 처제-아들/ 고모부/ 총 여섯 명이서 전날 밤에 다듬어놓은 배추를 씻고 양념을 버무리고 배추 전신에 빨강 화장을 예쁘게 했다. 무려 배추 100포기를 해서 일곱 가정이 나눠 가진다고 하니, 허드렛일을 담당한 나의 손놀림은 그 어느 때보다 분주하다. 근래 들어 이처럼 많은 양의 김장김치를 한 적이 없어 어안이 벙벙하다. 솔직히 김장김치는 각자 알아서 하면 서로 간에 심간이 편하고, 걱정할 것도 없는데 장모님의 피지 못할 사정과 부탁으로 우리 집에서 김장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속전속결로 김장 담그기는 시작되었고 짬짬이 주방에서 간식거리로 나오는 돼지 수육과 막걸리 한 잔은 쌀쌀한 추위도 물러가게 하고 간간히 뿌려대는 진눈깨비에 우리들은 깔깔대고 함박웃음을 터트린다.

오늘 내리는 눈을 첫눈이라고 말할 수 없지?
인생의 첫 글자는 스케일이 컸고 방대했으니!

첫 사람/
첫 만남/
첫사랑/
첫 약속/
첫 경험/
첫 이별/

스쳐가는 여인은 사라지는 인연이다. 떠나버린 인연에게 연연하지 말고 미련 갖지 말자고 다짐하는 순간, 김장 담기는 어느덧 끝이 보이고 긴장의 끈이 풀어진다.

마침 서울 성북구에 사는 처남은 준비해 놓은 김장을 가져가려고 우리 집 앞에 왔지만 건물 주변에 서성거리고 끝내 집안에는 들어오지 못했다. 장모님이 계셨는데도 먼발치 손으로만 인사를 나누었다. 처남댁이 감기 기운과 열이 난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유감스럽게도 코로나19는 가족의 정과 온기를 빼앗아 가버릴 정도로 극심한 공포를 준다. 현관문에 내놓은 김장김치를 혼자 실고 떠나는 처남댁을 보면서, 나는 너무 서운한 생각과 기분 나쁜 마음은 갖지 말라고 다독거렸다.

이게 다, 오지랖이 깊은 셋째 누나(집사람) 판단이다?^^

지금 우리 집은 철저한 방역 속에 세입자분들과 우편- 음식-택배에 종사하신 분들만 자유로운 출입을 바라고 있다. 서울과 수도권에 거주하신 분들은 내 집 출입을 절대 금지한다. 그만큼 신경이 곤두세우고 있다는 점이다. 어떻든 코로나(팬더믹) 와중에 처갓집의 김장 토크쇼는 무사히 끝이 났다. 내년부터는 각자 알아서 김장하기로 다짐을 하면서 말이다.

나는 30년 동안 처갓집 식구들과 김장 담그기를 서너 번 경험했지만, 처가의 /형님/ 처형/ 처제 /처남/ 성격들이 온순하고 착하다. 서로를 위할 줄 아는 우애 깊은 가족사랑이다. 일찍 히 홀로 되신 장모님에게 효도하는 모습을 볼 때면 그때마다, 난 엄마 생각에 고개를 떨꾼다. 엄마에게 불효는 변명의 여지가 없다.ㅠㅠ

특별히 훈훈한 광경은 장모님께서 김장날을 맞아, 거액의 돈다발을 꺼냈다. 딸 4명, 며느리 1명에게 공평하게 똑같이 천만 원씩을 나누어준다. 이 돈 말이야! 신랑한테 1원도 주지 말고 너희 몸치장에 전부 써라. "내가 죽기 전에 주는 마지막 용돈이다."


장모님 씀씀이도 크지만 배포가 바다와 같이 깊다. 자식이라도 부모가 돈을 주는데 싫다는 사람이 어디 있겠냐만 그중에 어느 누구는 엄마에게 돈을 받고 그 자리에서 울어버렸다는 소식이 들린다. 김장도 같이 못했는데 김장 보너스까지... 장모님은 연세가 많은데, 몇 해 전까지만 해도 공공일자리를 찾아 쓰레기 줍기를 마다하지 않았다. 고생 보따리를 머리에 이고 살았던 분이다. 이제는 몸은 쇠 악하여 거동에 불편을 주지만 자식 앞에 "카리스마"는 차고 넘친다.

장모님! 마지막 김장김치는 없는 거예요.
내년에도 우리 다 같이 모여 김치~ 찰깍 ㅎㅎ


다정다감한 장모님 표 김장김치에 올 겨울은 따스함이 가득할 것이며, 내년 한 해도 입맛 돋우는 가족 식사가 될 것이다.

가정의 행복이 가득함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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