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대구에서 있었던 일이다
우연찮게 40대 초반의 세 여성을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그중 병원에서 종사하는 한 여성이 다짜고짜 내게 혈액형을 물어왔다 혈액형이 뭐에요 나는 아무런 생각 없이 A형의 핏줄을 가졌다고 말해주었다 그랬더니 여성은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약간 가우뚱하였다 그리고는 이내 깔깔 거리면서 실없이 웃는 것이 아닌가? 나는 당황스런 표정을 지으며 그녀에게 궁금증을 물었다 왜 그러세요 혹시 피<血>에 대해 사무치는 일이라도 있으세요 그녀는 말했다 아니에요 환자를 보살피는 입장에서 직감적으로 스치는 것이 있어서요 거참 혈액형과 성격은 무슨 연관성이라도 있단 말인가? 한 참후 그녀의 말을 종합해본즉 A형의 DNA를 가진 사람들은 대체로 속이 좁고 쪼잔 하고 야비한 성격이 농후하다는 거였다 그녀는 소름끼칠 정도로 인간 혈액형<血液型>에 대한 사고<思考>와 고정관념<固定觀念>은 단호했다 마치 소신에 찬 확신범처럼 A형의 소유자들을 처참히 폄하하며 깔아뭉개고 있었다
“자고로 남자는 ,O형 혈통을 가져야 돼요 O형은 활동적이고 성격도 좋아요 타인과 유대관계도 좋고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기도 해요 매사에 긍정적이면서 남자다워요
당연지사 나는 그녀들 앞에만 서면 존재감 없이 초라해져만 갔고 끝내 우리들의 인연은 물거품이 되어야만 했다 나의 고매한 인격과 성품은 단한마디 변명도 없이 단한번의 검증도 없이…….더러운 쓰레기통에 처박히고 말았던 것이다
그런 일이 있고난 후 한참동안 혈액형의 논쟁에서 비켜나며 살고 있었는데 며칠 전 두 살 터울의 동네 형님께서 시비를 걸어왔다
동생, 길에 돈다발이 떨어져 있을 때 A형은 어떤 행동을 하는 줄 알아
어떻게 하는데요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으면 얼른 호주머니에 넣는다
그게 A형의 타입이야!!
이 양반이 내 피를 알고서 일부러 염장 질을 하는 거야, 뭐야!
나는 더 이상 피의 사투를 벌이고 싶지 않아서 형님께 짤막하게 여쭈었다
형님 피는 좋습니까?
나야 O형이라ㅡ
그럼 O형은 길에 돈다발이 떨어져 있으면 어떤 행동을 합니까?
그야 가까운 경찰서에 가서 신고를 하지
듣고 있자니 말문이 막히고 배알이 꼴려 미칠 지경이었지만 장유유서 정신으로 꾹 참을 수밖에 없었다
말이야 바른말이지 형님께서는 생각 없이 형편없이 막무가내로 사시는 분이다 뻔 한 거짓말도 자주하고 세상 잘 난체를 혼자 누리고 산다고 말해도 무방하다
세상살이라는 것이 보기 싫은 사람도 만나고 사는 게 인생이라서 그렇지 내가 이곳을 떠나면 형님부터 소식을 끊을 참이다.....
어쨌든 형님 참모습만을 보면 O형이 A형보다 낫다고 동의 할 수가 없다
하지만 혈액형을 전체적으로 놓고 봤을 때는 단연코 O형 성격은 믿음과 소망과 사랑이라는 걸을 인정한다
믿거나 말거나 내 기억으로는 나는 이때껏 단 한 번도 남의 물건을 탐하거나 훔친 적이 없는 것 같다 어릴 적 심한 배곪이를 했었고 심지어 서울구로동 쪽방에서 9일 동안 물만 먹고 지낸 적이 있었지만 빵 한 조각 훔쳐 보지 않았다 이건 당장 배고픔의 문제가 아니었고 성격 문제도 아니었다 양심적인 문제였다
마찬가지로 나는 길에 돈이 떨어져 있어도 거의 주워 본적이 없다
그것은 우선 내 돈이 아니기 때문이며 정녕 그 돈이 필요치 않기 때문이다
대신 돈이 꼭 필요한 사람이 주워가길 바랄뿐이다
내가 돈을 가져가지 않아도 분명 또 다른 누군가가 가져 갈 것이다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우리 집 아파트 현관문을 나서는데 길바닥에 신권 5만 원짜리 한 장이 눈에 띄었다 마침 주변에는 초등학교 애들이 몇 명이 놀고 있었고 나는 그들을 불러 세웠다
물론 아이들이 돈을 주웠고 그 돈을 가지고 무엇을 했는지 궁금하지도 않았다
누가 보면 나를 가리켜 참으로 답답하고 콱 막힌 인간이라고 조롱할지 모르겠지만 내가 걷고 있는 인생길은 돈을 줍고 안 줍는 것 하고는 별개다 그렇다고 성인군자처럼 올바르게 깨끗하게 살아왔다고 당당히 말할 수 없으며 떳떳이 얼굴을 내밀 수도 없다
다만 밴댕이의 속물처럼 느껴진다는 A형 스타일에서 벗어나 새롭게 살고 싶은 생각이 간절할 뿐이다
C형도 있다는데 정녕 S형은 없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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