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깝고도 지근거리에 살면서도 이 친구를 20여 년 만에 우연히 길거리 미팅으로, 긴 시간 동안 술자리를 가졌다는 것은 나의 무관심인가? 친구의 부족함인가? 우리는 80년 초 교회 청년모임에서 만나, 열성적이고 헌신적으로 신앙생활을 이어갔다. 하나님의 사랑 속에 예수님을 찬미했던 것이다. 소위 교회 오빠라고 불렀던 나는 충남지역 감리교 총회장을 할 만큼 소망과 믿음과 사랑을 실천하며 방대한 영역과 보폭을 넓혀가며 가장 왕성한 20대를 보내고 있었다.
수백 -수천 명이 모인 교회 청년들 앞에서 설교도 해봤고 간증을 들려주기도 했다. 매우 오글거리는 얘기지만 나는 사람들을 재치 있게 웃길 줄 알았고 짧은 지식으로 백과사전의 닉네임을 가지고 있었다. 젊은 청년들에게 인기를 한 몸에 받으며 가장 화려하고 멋진 시절을 보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세월은 하수상인가?
변변치 못한 직장생활과 허덕이는 생활고는 나의 신앙심은 도태되어 갔고 끝내 먹고사는 문제 때문에 교회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나에게는 삼시세끼가 우선이었다. 하나님도 가난한 사람을 원하지 않을 거야? 그동안 나는 앞만 보고 닥치는 대로 열심히 살아왔다. 이제는 어느 정도 가난의 굴래에서 벗어나 남부럽지 않게 안정된 삶을 살고 있지만 간혹 20대 시절의 교회 친구들을 생각하면 괜히 사무치는 그리움에 급 우울해지고 먹먹해진다.
다시 못 올 그 시절이 아닌가? 어느 하늘 아래서 살고 있는지 모르지만 다들 안녕과 무탈하고 있다면 꼭 한번 만나 보고 싶다. 그때 우리 교회는 작고 협소했지만 청년회 남녀 인원이 40~50명으로 활발한 예배를 드렸다.
친구도 나보다는 1~2살 어리지만 세월 따라 많이 늙어간다. 지금 친구는 투잡을 하며 가정을 이끌어가는 것 같다. 부모님이 교육자출신이고 제법 많은 재산을 가지고 있었는데, 어떻게 된 거야? 자세히 묻고 싶었지만, 친구의 쓸쓸한 한마디 말에 입을 닫고 말았다.
「내 인생은 오징어 게임이었어」
자주 보자는 약속을 하며 터벅터벅 집으로 돌아오는데 내 발걸음이 무겁고 더딘다. 친구야! 사는 게 뭔지?
오늘도 건물 옥상에서 나를 알아보는 양파가 빼꼽 내다보며 멍멍멍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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