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사무치도록 보고싶고 그리운 엄마~엄마!!

헤게모니&술푼세상 2018. 12. 9. 00:51
반응형

 

 

 

 

엄마.!

 

이 모진 세상을 등지고 하늘나라로 가신 지가 벌써 일주일이 흘러가고 또 한 주가 왔습니다.

보고 싶네요.

 

생전에 엄마의 기구하고 비극적인 삶을 알기에, 이 시간 저는 집을 나가거나 또 돌아오거나, 어디에 있던지, 그러든지, 그냥 서러워서 울컥하고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네요.

 

엄마! 당신은 썩어 뒤집어지고 뒤집어진 신상한 세월, 그리고 켜켜이 쌓인 한 많은 인생 때문이에요.

 

권위적이고 가부장적인 아버지를 스무 살에 만나 모진 시집살이와 극심한 가난 때문에 눈물 마를 날이 없었던 우리 엄마가 아니었나요? 병색이 완연한 아버지 수발에 16년 동안 청춘을 다 바치고 끝내 아버지의 죽음을 알리는 요량잡이의 슬픈 곡소리를 들어야 했죠.

 

 

졸지에 36살 청상과부가 되어버린 당신은 괴로울 때나 서러울 때나 아픔을 당할 때나 어디에 있든 가족의 주위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엄마! 기억나요.

 

제가 청계천 평화시장에 버려지고 이를 모를 상호를 옮겨 다니며<고군분투>정신없이 살 때 엄마가 홀연히 나타나 너희들은 절대 버리지 않으마.

 

하지만 제가 정글의 법칙처럼, 서울거리를 체험하고 이기적이고 다중적인 인간들의 군상을 알아가던 15살 때쯤 구로동 단칸방에서 엄마에게 말했죠.

 

엄마! 우리 생각하지 말고 재혼해.

야~ 이놈아! 막내는 어떡하라고...

다시는 그런 헛소리는 하지 말라하시며 엄마는 손사래를 치셨죠.

 

그러면서 단세포적인 한 말씀......

 

지금은 가난하지만 희망을 잃지 말고 절대 후레자식이라는 말은 듣고 살지 말자.

 

엄마 말씀에 우리 남매들은 서로 껴안고 얼마나 슬피 울었는지......

 

그래서 엄마는 굶으시면서 어린 우리 자식에게 끼니를 잇게 안간힘을 다하셨고 당신의 슬픈 눈물을 감추시려고 항상 곱고 맑은 웃음을 주시지 않으셨나, 생각해요.

 

그때 우리 남매의 서울생활은 말로다 표현 못할 만큼 어려웠어요. 세상의 멸시와 냉대와 좌절 속에 살아왔지만, 자나 깨나 착하게 살라는 엄마의 한결같은 말씀이 지금 우리 <남매>들을 있게 한 원동력이었어요.

 

엄마 누가 그랬나요.

가난은 죄가 아니다.

그건 정말 아니에요.

 

저에게 있어 가난은 죄악이고 인간을 비참하게 만들었어요. 그간 저는 가난에서 벗어나고자 배운 사람과, 있는 사람에게 빌붙어 살아보자고 노력했지만 부자들은 그 대열에 인정은커녕 합류도 허용하지 않았어요.

 

순전히 홀로 단신과 독고다이로 살아왔어요.

 

그것이 저에게 치명적이었고 부끄러움으로 남습니다. 결코 엄마는 기다려주지 않는데 엄마의 운명의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는데 내 가정과 자식만 생각했다는 겁니다. 부모 마음은 부모가 되면 잘 안다고 했는데 말입니다. 지금에 와서 고개 숙여 후회하고 반성해도 소용없지만 엄마의 무궁무진한 사랑과 지극한 은혜는 잊지 못합니다.

 

엄마! 죄송해요.

 

7년 전 짧은 나이로 큰형이 세상을 떠나자, 저는 꿈을 꾸듯 악몽이었고 절망이었습니다. 엄마를 잘 모셨니, 못 모셨느니. 호사가들이 우리 가정사와 사생활을 얘길 할 때, 그래 나는 형 만한 아우가 없듯이 장남 자격이 없다. 그렇지만 남의 일에 참견 말고 재단하지 말고 "너나 잘해라"라고 웃어 넘기기도 했지요. 제가 불효를 했는지 효도를 했는지는 울 엄마가 잘 알겠지요.

 

해마다 가는 고향과 아버지 묘소 옆, 바닷가 모래사장에서, 제가 엄마에게 부탁했죠.

내 이름 좀 써봐.

막대기로 쓴 단 두 단어,?

(둘째)......

 

그 뜻과 의미를 너무 잘 알기에 이 글을 쓰는 이와 중에도 눈물이 앞을 가려요.

 

엄마! 엄마! 엄마만 생각나면 눈물이 나.! 울어도 울어도 눈물이 나는 것이 엄마야!

 

시냇물의 흐름을 막을 수는 있어도 세월의 흐름은 묶어 놓을 수가 없었다고요. 무심히 흘러버린 세월이 곱던 엄마의 얼굴에 굵고 가느다란 자국들을 만들었고요.

 

지난날에 막내가 엄마를 안고, 업고 숙소로 향할 때, 엄마의 형체는 온데간데없고 가슴 미어터지는 절벽뿐이었습니다.

 

유독 막내에게만(포옹)을 허락했던 당신입니다. 엄마가 숨을 거두신 날, 이성을 잃어버린 막내의 오열과 통곡소리는 아마도 이리저리 얽히고 설킨 엄마의 삶의 자국과 흔적들이 너무도 잔인했기 때문에 그랬을 겁니다.

 

엄마!

다시 한번 강조합니다.

자식 된 도리로서 정말 부끄럽고 죄송하고 죽을 만큼 험한 계곡입니다. 지은 죄 어디 없어지지 않겠지만 지워 버릴 수만 있다면 모두 지워버리고, 정말이지 나에게 있어 세상에서 가장 고귀한 엄마 얼굴 인자하고 자상한 엄마 얼굴만 남아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엄마!

그나마 이제야 저를 "고아"로 만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비록 엄마는 우리 곁을 떠나셨지만 "엄마"라는 두 글자는 영원히 잊지 않을 것이며 엄마의 유언대로 남은 남매들과 싸우지 않고 우애 있게 정 나누며 살겠습니다.

맘고생이 심했던 형수님의 정성을 잊지 않겠어요.

 

#오직 #한마음 #자식 #잘 되기를 #비셨던 #엄마.

 

엄마가 사랑했던 큰형 만나고 불쌍했던 아버지 만나고 그토록 의지했던 하나님을 뵙길 바래요.

 

썩어 문 드러 질 내 인생, 다음 생애가 주어진다면 다시는 엄마 자식으로 태어나지 않으렵니다.

 

엄마!

사랑했어요

편히 쉬세요....!!

 

Ps

엄마는 사진에 보이는 것처럼 곱고 예쁜 신세대 여성이었다. 처녀 때 서울 영등포 방림방적에 근무하기도 했다.

경찰 아버지를 만난 것이 엄마의 고달픈 삶의 여정~

.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