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여대생 살해범의 기사 내용을 보면서 어쩌면 인간이 저토록 잔인할 수 있단 말인가 극악무도하고 천인공노한 살인행각에 몸서리치듯 치를 떨고 격한 분노를 느끼는 것은 나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표현이 다소 거칠지만 살해 과정을 들여다보니 목 졸라 죽인 것도 아니고 끔찍하게 마구 때려 죽였다는 사실에 도저히 순화된 언어를 사용할 수가 없다 제발 사형 폐지국이니 뭐니 지랄 떨지 말고 당장 사형시켜라 이 에는 이, 눈에는 눈처럼 돌멩이로 마구마구 쳐 죽여라 투석형으로 말이다 억울하게 죽은 사람은 말이 없는 법이다 그러나 피해자 가족으로 살아가야 하는 유가족들의 고통과 원한은 살아도 죽어도 씻을 수가 없다 벌써 10년이란 세월이 훌쩍넘어가 버렸지만 선명하고 또렷한 사건 하나가 내 마음을 '몸서리'치게 만든다 21세기를 맞이하는 해였던 것 같다 관내에서 엄청난 살인 사건이 일어났다 전국 방송과 신문으로 보도될 정도였다 잠깐 ㅡ지금 와서 돌이켜 보면 우연치곤 필연이 되고 말았지만 김영삼 정부는 1997년 12월 25일 23명의 사형수를 깔끔히 처리한다 이후로 김대중 정부부터 지금까지 사형을 집행하지 않는 폐지국 단계에 이르고 있다‘ 유감이다ㅡ 그날도 마찬가지로 여고생이었던 某 양은 아침 자습을 위해 이른 아침 큰길을 마다하고 빠른 골목길을 택한다 조치원 소재<學校>를 향하는 첫차를 타기위해서다 그것이 운명을 가름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골목길에는 전국으로 발품을 팔며 떠돌아다니는 뜨내기<勞動> 사내가 살고 있었다 의도적으로 등교하는 여고생을 노렸다 순전히 성욕으로 채우기 위한 수단이랄까? 그러나 여고생은 격렬히 반항했고 당연히 범인의 목적은 실패했다 하지만 결과는 비참했고 충격 그 자체였다 차마 눈뜨고 쳐다볼 수 없을 만큼 잔인하고도 끔찍한 살인 현장을 남겼다 어린 여학생에게 야구방망이로 처참히 살해했다 학생 가족들과 우리집안은 식구처럼 왕래가 빈번한 사이었고 사건 현장으로부터 불과 50미터 간격으로 서로 살고 있었기 때문에 살인 현장 장소를 자세히 볼수 있었던 것이었다 근처에서 식당업을 하시는 형님이 경찰보다 먼저 현장을 달려갔었는데 늘 보던 얼굴을 전혀 못 알아 볼 정도로 참으로 참혹한 광경이었다 다행이 도주하는 범인을 경찰이 신속히 검거하여 또다른 사건을 예방할 수 있었음에 감사했지만 에멘 사람을 죽이고나서 몇 년 감옥에 살면 풀려날 것이라는 사실에 몸서리가 처질 정도였다 나는 한동안 숟가락을 들을 수 없을 정도로 충격에 빠졌고 슬픔을 가늠할 수가 없었다 피해자 집안과는 각별한 인연도 있었지만 죽은 학생은 유복자로 태어난 불쌍한 아이였다 80년 초반 형과 단둘이 이곳에 정착했을 때 학생의 어머니는 우리와 같은 직장에 다니는 동료이기도 했다 임신한 상태로 공장을 다니는 모습을 보면서 참 안쓰러운 생각이 들어 우리형제는 식구처럼 살갑게 대했고 그해 공무원이었던 남편이 지병으로 세상을 떠나던 날 집안처럼 나서서 장례를 치러주기까지 했다 아빠도 모르고 태어난 아이는 학교생활도 잘 적응하며 공부도 학급 내 톱클래스 정도로 잘했다 얼굴도 예쁘고 마음도 착했다 동네에서는 효녀로 부를 만큼 소문이 자자했다 엄마를 끔직히 생각하는 착한 딸이었다 나는 지금도 장례식장에서 울부짖는 학생 어머니를 잊을 수 없다 젊은 여자가 남편을 일찍 잃고 재혼도 하지 않고 두 남매를 애지중지하며 키워왔는데 이렇게 억울하고 악랄한 변을 당하고 말았으니 그 심정을 누가 헤아릴 수가 있고 어떻게 그 마음을 위로 할 수가 있단 말인가? 동공이 풀릴 정도로 딸의 이름을 부르며 ‘내가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 고 울부짖으며 끝내 넋을 잃고 실신하고 마는 학생 어머니를 우리부부는 죄지은 사람처럼 아무 말도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내 가슴은 찢어질 정도로 천갈래 만갈래였다 갈기갈기 찢어 죽여도 시원치 않을 금수<禽獸>만도 못한 살인마<殺人魔>다 부디 감옥에서라도 급사<急死>해라 어린 나이에 유명을 달리한 불쌍한 영혼을 봐서라도 반드시 객사<客死>해야 한다 얼마나 간절히 소원했는지 모른다 내가 바라는 대로 살인마 그놈이 죽지 않고 살아있다면 자금쯤은 영어<囹圄>의 몸에서 벗어나 버젓이 거리를 활개 치며 다니고 있을 것이다 이점은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다 제작년 형님을 하늘나라로 보내고 3일째 되는 삼우제 날 형님 집에 어떤 여인이 찾아왔다 어디서 봤더라/ 누구지/ 한참 머리를 기우뚱거리는데 형수님께서 어이가 없다는 듯이 대답을 했다 삼촌ㅡ 그 아줌마잖아ㅡ 몰라ㅡ 뭐라고요/ 그 학생 엄마라고요/ 가히 충격적이었다 너무나 변해있었다 매우 늙어버렸다는 사실이다 나보다는 대 여섯 살 정도 차이 밖에 안되는 윗사람인데 노인네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가슴이 먹먹하고 눈물이 날 정도였다 자식이 죽으면 부모 품안에 묻는다는 말이 전혀 틀리지 않는 것 같았다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로 성수대교 참사로 자식들을 잃고 끝내 우울증이라는 병에 걸려 강물에 뛰어들고 열차에 몸을 던지는 부모들의 심정과는 뭐가 다를까?ㅡ “나는 살아도 사는 게 아니야! 딸한테 갈래"ㅡ 법을 전공하고 법을 관리하고 법을 판결하는 종사자들에게 말하고 싶다 억울한 피해자와 유가족의 심정을 아는가 모르는가? 거두절미하고 사형제 부활하면 안 될까요? ㅡ사형 자체가 좋다는 것은 아니지만 사형제 폐지와 관련해서는 신중하게 고려해 보아야 한다 사람을 죽인다는 것은 끔직한 일이다 네가 사람을 죽었으니 너도 죽을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라ㅡ 박근혜 대통령의 예전 말씀이 이토록 사무치고 애간장을 태우는지 모르겠다 나는 대통령의 옳고 바른 판단을 믿고 싶다 사형제 부활을 기대한다 사람이기를 포기하는 인간에게 반드시 밧줄이라도 매는 법치국가<法治國家>대한민국을 보고 싶다 살인마를 죽이는 방법은 얼마든지 많다
화형식
총살형
참수형
투석형
독국물
생매장
전기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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