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송충이는 솔잎을 먹고 살아야한다

헤게모니&술푼세상 2010. 11. 6. 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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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깊이가 깊어 갈수록 나는 가을을 탑니다
가을만 되면 찾아오는 외로움과 그리움은 마음을 뜨악스럽게 만들고 허허로운 들판처럼 황폐하기까지 만듭니다
그 마음을 알아차리기라도 했을까요
마침 내가 하고 있는 어떤 모임에서 가을 기차여행을 가자고 제안이 왔습니다
소위 묻지 마? 관광이라고 했습니다
가뜩이나 심란하고 울적한 마음이라 잘됐다 싶어 쌍수를 들어 환영했고 그날을 손꼽아 기다렸습니다
묻지 마 여행이 있다는 말은 많이 들어 봤지만 세상 태어나서 처음 접해보는 것이라 기대반 설렘반이었습니다
좋다! 그날 하루 해피하게 보람 있게 즐겁게 후회 없이 놀다 오리라ㅡ 나는 결심하고 결전을 불태웠습니다
드디어 10월 23일 아침은 밝았습니다 
마누라는 고생한 내 남편 모처럼 바닷가여행 간다고 사골국물에 면사리와 소고기 편육을 넣어 아침상을 차려줍니다
잘 다녀오세요ㅡ 하며 지갑 속에 10만 원을 넣어 주기까지 합니다
허탈한 웃음이 나왔습니다
마누라한테 약간 미안한 생각도 들었지만 이미 콩밭은 따로 있고 마음 떠나 있는 어쩔 수 없었습니다.
룰^룰~랄^랄 조치원역으로 나갔습니다 이 모임은 출생지도 각각 전국구고 직업도 다양합니다
교사. 공무원. 은행지점장. 농사꾼 룸펜. 자영업. 공장사업. 막일. 등등입니다
근데 한 달 전 약속은 15명 회원전부가 가기로 했는데 총 6명만이 역광장에 모습을 나타났습니다
약간은 서운했고 아쉬움이 있었지만 아직까지 우리 모임에 모사꾼 난봉꾼 사기꾼이 없는 관계로
필경 각자 무슨 사정이 있겠지 하며. 못 오는 회원들을 넓은 도량으로 이해했습니다
노는데 숫자가 뭔 대수야! 숫자는 숫자에 불과해..
그런데 이게 웬일! 아침 먹구름 날씨처럼 여행 첫걸음이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분명 철도청에 다니는 후배가 서울에서 이쁜 아줌마들을 싣고 오는 기차라고 했는데 대전에서 출발한 가을 기차여행입니다
조치원에서 수백 명이 탑니다 머리가 돌 것 같습니다
30년을 이곳에 살았는데 언젠간 한 번쯤은 본 사람들의 안면(얼굴)입니다
고개를 못 들겠습니다
선글라스로 눈을 가리고 옷깃을 높이 쳐들어 보지만 키 큰 놈은 어딜 가도 표가 납니다
목적지 강원도 정선 민둥산처럼 쉽게 눈에 띕니다
더욱이 문제 하나가 심각하게 발생했는데 회원 한놈이 내 친한 여자친구가 운영하는 보신탕집식당에서 일하는 아줌마한테 기차여행 가자고 꼬드겼나 봅니다
그 여자가 쪼르르 따라 나왔습니다 참으로 개 같은 날 아침이었습니다
나의 행동반경은 한계에 부딪치고 좁은 울타리가 될게 뻔했습니다
이게 뭐야! 이게 무슨 묻지 마! 관광이야! 개판 오 분 전이 될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역시나 기차에 올라타니 여기저기 아는 사람이었고 심지어 어린애들까지 꼽사리 끼어 중구난방입니다
기차 안에는 여자분들이 태반이었는데  눈물 나게 모두가 누나입니다
솔직히 올해 내 생일이 안 지나서 (만)으로 따지면 나이 마흔여덟 살인데 제기랄 모두가(육순) 60세 정도 보이는 누나들 뿐입니다
후배를 죽이고 싶었습니다
나는 눈을 감고 입을 닫아 버렸습니다
한없이 기차 창밖을 쳐다보며 한없는 불만을 혼잣말로 쏟아내고 있었습니다
괜히 왔어! 괜히 왔어! 헛수고야! 미쳤어! 내가 왜 그랬어! 화려한 잔치에 먹을 것 없어! 이건 판단 미스야! 실수였어!
단숨에 술한병을 나발을 붓습니다
이게 나의 나발? 같은 인생이다. 하고 말입니다
우리 누나들 참말로 술도 잘 드십니다
술이 들어가자 우리 누나들 잘도 흔들어 댑니다
벌써 기차 안 통로는 누나들이 관광춤 댄스공연이 시작됩니다
~ 놀세 놀세 젊어서 놀아 늙어지면 못 노나니~ 참으로 말 같은 얘기인지 모르겠습니다
우리 누나들은 우리 계원들을 끌어내어 잘도 놉니다
우리 계원들도 나이차이가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정말 그때 기차여행 동행하신 누나들께 죄송한 얘기지만 누나들 뒷모습이라도 와~ 감탄할 정도면 좋았을 텐데
앞을 보나 뒤를 보나 하나같이 얼굴모습들이 모두가 헐~ 헉~입니다
도저히 기분을 숨기며까지 놀 수는 없었습니다
나는 계속해서 술만 들이키며 창밖을 응시합니다 그리고 사회복지를 생각하고 노인복지를 생각합니다
오지랖 넓게 진수희보건복지장관님께서 참으로 힘드시겠다는 엉뚱한 생각도 합니다
나도 세월이 가면 갈수록  늙어지고 노인이 되겠지만. 고만고만하고 끼리끼리가 있는 게 세상 이치가 아니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지금 상황은 이게 아니잖아
자석 배치를 이따구로 배정한 코레일이 미웠습니다
그때였습니다
어떤 누나가 저를 쳐다보며 말합니다
저 오빠는 무게만 잡아 재수 없어
나보고 오빠
이러다 이 오빠 홱 돌아!
정신병원에 실려 갈 것만 같습니다
기차가 30년 전 기차였다면 아마 뛰어내렸을 겁니다
영월을 지나니 기차는 하늘을 타고 있었고 우리 몸은 우주를 탑니다
높은 데서 내려다보는 강원도 강산은 오색단풍으로 아름다운 가을 풍경을 연출해 냅니다
s자 코스로 펼쳐지는 그림 같은 강원도의 명물 굽은 도로를 살펴보니 내 마음속에 여인 s형이 보고 싶어 집니다
엄마가 보고 싶고 우리 여성합창단원들이 보고 싶습니다
옛날 스쳐 지나간 경애 경희 명숙 희자 미숙 선옥 효숙 영미 경숙 희숙 미경 인숙 영숙 등등 많은 여자친구들이 그립습니다
참 그 여인들이 참 예뻤다는 생각이 들었고 참으로 소중한 사람들이었구나 하는 아쉬움에 좀 더 잘해 줄걸 후회막급이 밀려옵니다
참으로 부평초 같은 내 인생입니다
정오쯤 목적지 민둥산역에 도착하니 떠^억 민둥산 등산이 시작됩니다
온몸에 식은땀이 주르륵 주루룩입니다 등산이 힘들어서가 아니라 아침부터 좋지 않은 컨디션 때문 인건 자명합니다
사람들은 말합니다
산이 거기 있으니까
산에 간다고
나는 아닙니다
가파른 산길을 올라가는데 보이는 것은 산이 아니라 우리 누나들 엉덩이입니다
나는 산에 가는 것이 정상에 기쁨이 아니라 앞선 사람의 엉덩이 산행하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 누나들 엉덩이가 이렇게 큰 줄은 처음 알았습니다
중간쯤에서 포기하고 내려왔습니다
홀가분하게 내려왔지만 기차출발 pm6시 30분입니다
자그마치 장장 5시간을 어디서 기다려야 한단 말인가?
죽치고 술 먹기도 그렇고 여관방에 가서 몰래 쉬는 것도 그렇고
에라 모르겠다
민둥산 광장에 있는 외딴 벤치를 찾았습니다
그리고 웃옷을 벗어 얼굴을 덮고 잠들어 버렸습니다
노숙자가 따로 없습니다
한참 지났을까?
바스락 소리에 눈을 뜨니 경찰관이 나를 빤히 바라봅니다
나는 왜 경찰나리와 맴이 안 맞고 코드가 안 맞을까요
하는 수 없이 벤치에 일어나 알고 지내는 형님들과 강원도 옥수수막걸리에 시간을 죽여봅니다
내 신세가 서럽습니다
근데 이게 무슨 할렐루야 사랑입니까?
그거 진짜 묻지 마 맞나요?
s형 문자였습니다
울컥했습니다
아니! 아닙니다
억울합니다!
구세주 같은 형의 메시지 등장으로 마음이 한결 가라앉고 나아지고 있었습니다
조치원으로 돌아오는 길에도 역시나 우리 누나들 가을여행의 아쉬움은 절정에 다 다릅니다
질펀함도 보입니다
아침부터 반복적으로 흘러나오는 노랫말이 기차 안을 울립니다
고달픈 우리 인생사를 아는 것처럼 말입니다
~우지 마라 우지 마라 인생이란 다그런거다 가다가 정이 들면 쉬였다 가면 되지 미련이랑 남기지 말어라~
그래요! 누나들 저도 늙으면 누나들 모습처럼 저도 그리 재미있게 살아갈지 모르지만 당분간은 말입니다
ㅡ 묻지 마 여행ㅡ
묻지도 말고 따지지도 않고 가지도 않을 것입니다
그때 만난 누나들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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