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내고향,장흥!

헤게모니&술푼세상 2010. 8. 26. 2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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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나는 고향의 향수(鄕愁)는 별로 없다.
아주 어린 나이에 고향을 등졌고 매우 빠른 속도로 변하는 세상에 동화되어 살아왔기에 고향 산천의 그리움과 설렘 동경심은 그리 숨 가쁘지 않고 영원하지도 않은 것 같다.
그러나 어릴 적 소중한 가치와 경험들은 장구한 세월이 흘려도 내 가슴속 깊이 새록새록 남아 있다.
강원도에 가면 그림 같은 정동진 마을풍경이 있다면 전라남도에는 정남진이라 불리는 아름다운 내 고향 장흥이 있다
나는 그곳에서 태어났다
좀 더 고향 깊이 <주소>를 내비게이션처럼 찾아가 보자
ㅡ전남 장흥군 안양면 삼교리ㅡ
큰 길가에 자리 잡은 삼교리는 u자형 모양으로 간결히 정돈되어 있으며 고즈넉이 정감 있는 훈기를 뿜어내는 조용한 마을이다.
읍내 와는 가까운 마을이라 깊고 꽉 막힌 산골짜기의 촌구석과는 거리가 멀다.
마을에서 바라보는 고향의 풍광은 소소하고 예쁘고 정갈하다
뒷동산에서 불어오는 소나무 향기와 넓게 탁 트인 들녘을 바라보면 저절로 웃음 짓게 만든다
넓은 벌판 정중앙에는 전라도에서 몇 번째 손꼽히는 큰 저수지가 보이며 저수지를 넘어, 어느 마을을 넘고 넘으면(명산) 천관산이 턱 자리 잡고 있다.
장흥에는 재암산, 억불산 그리고 내가 다녔던 안양국민학교 뒤편 사자산도 보인다.
왼쪽으로 눈을 돌리면 망망대해 바닷가가 펼쳐진다
이웃마을 사촌리 해창리 덕동리 수문리는 바닷가 마을이다. 10여 키로를 걸쳐 바닷가를 끼고도는 드라이브 코스는 연인들의 필수과목이라 할 수 있겠다. 비록 큰 백사장은 아니지만 수문리 해수욕장은 전국적으로 명성이 나 있다.
좀 더 차의 엑설레이터를 밟다 보면 유명한 울포해수욕장. 보성녹차. 태백산맥 문학관 순천만 별교음식을 맛보고 즐길 수 있다.
오른쪽으로 눈을 돌리면 염암 (월출산) 강진, (도자기). 정약용(유배지), 해남 땅끝마을과 (대흥사)를 보게 된다.
장흥에서 다 지근거리에 있는 곳이다.
인터넷 검색을 하면 장흥의 문화 역사를 자세히 알 수 있겠지만 무엇보다 자랑할 수 있는 것은 장흥에는 문학인이 많이 배출되었다는 사실이다.
정·관계 인사들은 재미없어 지면상 생략하겠다.
내가 책으로 봤던 소설가 한승원, 송기숙, 이 청춘, 정병우, 김제현, 이승우外 몇 명을 꼽는다. 듣기로는 소설가 아동문학가 평론가를 포함하여 120여 명의 문인들이 장흥출신이라고 한다
군 단위를 통틀어 전국 최고다.
정말 나는 그 점이 자랑스럽다.
나는 우리가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여행지가 있다면 내 고향 장흥이라고 말하고 싶다
천관산에서 바라보는 다도해 풍경을 나는 잊지 못한다
물축제, 해양낚시공원. 탐진강 생태습지, 제암산 철쭉제. 억불산 삼림욕장. 장흥댐 등등

구경 다 끝나셨습니까?

이제 장흥토요장터에 가서 장흥한우 표고버섯 키조게(삼합)를 쌈에 싸서 소주 한잔 들이켜 봐요
세상 천국이 따로 있겠습니까? 황홀함에 극치입니다.
계절 따라 나오는 별미음식! 매생이국. 전어회. 물회. 장흥낙지 갯장어 맛은 잊을 수 없을 겁니다.
두 가지만 더 소개합니다.
첫째, 장흥 안양면, 소재 전국 최초로 알몸 산림욕장 <길이 3.5km> 개장(9월 중순)을 한답니다.
(프라이버시를 위해 가족들을 위한 알몸 공간이 있음)
홀딱 벗고 편백숲에 피톤치드를 마음껏, 만끽할 수 있다면 그 또한 지상낙원이 될 것입니다.
어감상 누드. 나체라는 말은 법적으로 사용할 수가 없답니다
둘째 우리 고향 동네 앞 삼교저수지를 적극 안내 합니다.
좋은 사람들과 다정히 손을 잡고 걸어보시는 추억을 가졌으면 해요 일제강점기에 만들었던 저수지 모양은 감탄할 만큼 경이롭고 이채롭습니다.
동그란 원형에 잔잔한 물결들은 이내 포물선을 모으고 또 펼치고 저수지 가장자리에 연꽃들이 물안개와 함께 피어오르면 금세 우리 마음은 정화됩니다
걸어보시지요
약 40여분 소요됩니다
나는 고향저수지 둑길을 걷다 보면 어릴 적 그 시절이 생각납니다. 저수지 명칭을 놓고 이웃마을 목단사람들과 왜 그렇게 피 터지게 격렬하게 싸웠는지 지금 생각해 보면 쓴웃음이 나옵니다
삼교저수지다/
목단저수지다/
비약하고 협잡하기 이를 때 없는 사제화살 사제총 새총 각종 무기들이 이곳저곳에서 돌멩이와 함께 날아들고, 님비현상은 참 가관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아픈 기억보다는 맑고 깨끗한 냇가물에 친구들과 멱을 감고 물고기를 잡고 마음껏 뛰놀던 어린 동심을 잊지 못합니다.
나에게 있어 귀하고 귀한 노란 참외를 한입 물고 휘영청 달밤에 친구들과 노래도 하고 술래잡기하며 몹시 재미있고 즐거워했던 그 시절 그 추억을 잊지 못합니다.
中略...
아~ 나의 아름다운 어린 시절 뒤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호사다마였습니다.
박복한 내 운명이었어요
내 나이 겨우 11살입니다
아버지의 죽음 가난한 삶의 굴레는 나를 미쳐있거나 죽어있던가 양자택일의 기로에 서있게 했습니다. 어느 날 나는 내 눈에 눈물을 버벅이 안은채 고향땅 장흥을 버리고 있었습니다
타인의 힘에 의해...... 강제로......
지금 나는 두서없이 내 고향 자랑과 추억을 얘기하고 있지만 그때 잔인한 이별의 순간들은 아픔과 슬픈 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내 고향 장흥을 함축적으로 표현한다면 무미건조 무색무취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뭐가 좋고, 뭐가 나쁜지.....

암튼
내 고향 장흥 한번 들러보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ㅡ일상의 탈출은 되실 겁니다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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