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4년 어느 오후 여름날이었다.
아주 앳되게 보이는 두 형제가 태양빛이 내리쬐는 서울 가리봉동 길 한복판을 걷고 있었다.
그들의 모습을 보면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만 같아 힘이 없어 보였으며 몰골이 수척하고 비몽사몽 한 상태였다.
형제는 나흘여 동안 어떤 종류의 음식물들을 섭취하지 못하고 있었다.
배가 고팠다.
눈물이 핑 돈다.
동생은 11살이었고 형은 14살이다.
그들은 돌멩이를 집어삼킬 듯이, 한참 먹성이 필요한 나이었다.
둘 다 각자 중국집 배달 종업원으로 일을 했지만 무지막지한 주인장 폭력에 못 이겨 거리로 뛰쳐나와 버렸다.
처량한 신세였다.
갈 곳이 보이지 않았다.
행여 둘이서 같은 곳에 취직을 하면 서로 의지하고 안심될 것 같아, 여러 간판 문을 두드려 봤지만 한 군데도 받아주지 않았다.
그러나 여기서 포기할 수 없었고 더군다나 좌절은 있을 수 없었다.
당장 목구멍이 포도청이다.
두 형제는 무작정 서울 거리에 눈을 맞추고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일거리를 찾아 헤맸다.
서울시내를 빙빙 돌고 돌았다.
땅에 떨어진 동전 한 푼 없을까?
그날도 어김없이 신길동 우신시장을 지나 사당동 현대시장까지 갔다가 오는 길이었다.
그나마 다행인지, 시장바닥에 덩그러니 버려진 양파를 우걱우걱 씹어 먹은 게 전부였다.
이제 형제가 나머지 길을 걸어야 할 곳은 구로동 버스종점 <118~121번> 근처 벽돌공장이다.
벽돌공장의 한구석에는 두 형제가 간신히 웅크리며 누울 수 있는 숙소 <아지트>가 있었다.
취직이 안된 우울한 마음은 그곳으로 향하기엔 너무 무거웠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한참 얼마쯤을 걸었을까?
저 멀리 구로시장이 보였고 마침 그날은 장날이라 사람들로 붐볐다.
그런데 한 귀퉁이 한편에서 눈에 띄는 광경이 펼쳐졌다.
낯선 약장사였다.
잡숴봐!
한번 먹으면 시원스럽게 배설물이 빠져나간다고 말한다.
소위 말하는 기생충, 요충 십이장충에 효과가 있다는 약 팔이의(홍보&선전) 외침이었다.
사람들은 옹기종기 모여들었고 두 형제들도 자연스레 약장사의 <自判> 그 틈새로 끼어들고 말았다.
잠시 후, 약장사는 약의 효험이 얼마나 좋을지 직접 시연을 보여 주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시범을 보여줄 어린애가 필요하다며 두리번두리번거렸다.
약장사와 두 형제와 눈이 마주쳤다.
당연시처럼 형제 불러 세우며 말했다.
곧바로 200원을 주겠다.
내가 시키는 대로 잠깐 난장을 보여주면 된다.
달콤한 흥정은 아니었다.
약장사는 눈을 깔며 윽박지르고 있었다.
졸지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약장사가 아니라 약장수였다.
형제 중에 동생이 먼저 고개를 끄덕거리며 수긍해 버린다.
얼떨결에 일어난 일이었다.
형은 차마 눈을 뜨고 그 광경을 볼 수 없었다.
어느새 동생 아랫도리는 내려가 있었고 엉덩이는 구경꾼을 향해 멈춰 서 있었다.
약장수는 현란한 손놀림과 말솜씨로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자! 눈을 크게 뜨고 보세요.
어린애 몸에서 회충이 나옵니다.
분명 사람 눈을 속이는 속임수였고 명백한 사기였다.
약장수 손에는 꿈틀거리는 지렁이들로 가득했다.
형은 동생 옆에서 지켜볼 수 있어서 그 과정을 세세히 보았던 것이다.
그걸 알리 없는 구경꾼들은 손뼉 치며 호응하며 박장대소를 했다.
동생은 몸을 파는 피에로였고 재주 부리는 원숭이와 다를 바 없었다.
형은 흙빛이 되어버린 동생 얼굴을 봤다.
눈물이 핑 돌았다.
비참하고 참담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형제는 약장수가 내미는 200원을 받아 들고 무작정 시장 안으로 뛰어들었다.
배곯은 허기를 채우기 위해서다. …….
30여 년이 흐른 어느 날 술집에서 두 형제가 만났다.
형은 약장수의 그 일을 떠올리며 말을 꺼냈다.
그때 그걸 말리지 못하고 정말 미안하다.
동생은 아무렇지 않은 듯 무덤덤히 대답을 했다.
그때는 누구나 어렵고 힘들게 살아왔잖아!
우리만 가난하게 산 게 아니잖아?
창피하고 부끄러운 것은 없다구!
다만 그때 형이 나섰으면 좋았을걸 그랬어.....
형 엉덩이가 예쁘잖아?
두 형제의 지나온 삶은 대하소설이고 성경책이다.
사고 위험성도 많았고 범죄유혹에 빠질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누구보다도 범죄자가 될 개연성이 많은 요주인물이었다.
특히 살아오면서 얼마나 서럽고 외롭고 원망이 많았으면 사람들을 분노하고 극단적인 복수를 생각했는지 모른다.
능멸과 멸시, 무시와 차별의 따돌림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삶의 무게를 스스로 내려놓자고 몇 번이고 자살을 생각하고 실행도 했었다.
그러나 이런 죄악스런 것들을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사람으로서 도리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아버지 유언대로 범죄와의 가족은 되고 싶지 않았다.
참았다.
인정했다.
아래를 봤다.
운명이었다.
용기를 다졌다.
희망을 꿈꿨다.
앞만 보고 달리고 달렸다
맨땅에 헤딩골을 쏘았다.
지금 두 형제는 끈끈한 의리와 믿음 <형제애> 속에 잘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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