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설명절날에 엄마생각에.ㅡ.

헤게모니&술푼세상 2024. 2. 13.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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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에 설명절이 다가오면 엄마는 당연시처럼, 전남 장흥읍내 골목시장을 찾았다.

하루에 딱 두 번 동네 앞 길을 지나치는 왕복 버스를 타려고 아침부터 분주하게 움직이는 엄마의 모습을 보면 나는 흐뭇하고 입가에 웃음이 가시질 않았다.

엄마가 바리바리 싸 온 보따리(명절-선물)에 눈독을 가졌기 때문이었다.



오늘은 지난 설날에 약속했던 때때옷을 사 오실까?

브랜드 과자와 인기 있는 장난감은 사다 주실까?



그러나 기다림의 미학보다 기다림의 고통이라고 할까?



이른 아침에 첫차 버스를 타고 대목장을 보러 가신 엄마는 점심때가 지나가고 급기야 저녁노을이 다가와도 집에 오시지 않았다.



겨우 아홉 살이던 나는 엄마 걱정에 앞마당에 나가 멍하니 쪼그리고 앉아 "엄마"라는 두 글자를 수 없이 써가며 우리 집에 싸리문을 한없이 쳐다보곤 했다.



둘째야!

엄마 왔다.

왜 이리 늦었어?

버스를 놓쳤단다.



묵직한 보따리를 이고 장장 3시간 여를 허비하며 힘겹게 걸어오신 엄마의 속사정을 아량곳 없이 나는 잽싸게 선물 꾸러미를 풀어헤쳤다.

그런데 달랑 큰형의 위아래 옷 한 벌과 차례상에 필요한 각종 나물과 생선, 그리고 홍동백서의 기준이 되는 과일뿐이다.



엄마 내 선물은 없어?

형이 입었던 옷 입어!



정말로 하늘이 금방 무너질 것 같았다.



엄마는 늘 큰형만 생각해!

둘째는 사람도 아닌가 봐?



엄마가 나를 너무 방치하고 무관심하다는 생각이 머리 꼭대기까지 치밀자, 나는 내 방에 틀어박혀 이불을 뒤집어쓰고 며칠을 끙끙거렸다.

덤으로 몇 개의 연필을 두 동강 내고 공책을 갈기갈기 찢어버리는 못된 짓을 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가난의 굴레 앞에 엄마의 아픈 심정을 모르는 철없는 어린아이였다.

어느덧 장구한 세월이 흐르고 나는 가정과 부모의 책임을 안고 인생의 후반기를 맞이한다.

내 삶이 서럽고 힘들고, 때론 아프고 병들면 저절로 외마디 비명소리가 나오는데 오직 "엄마"라는 단어다.

#아이고
#울 엄마

PS

세상에 단 하나뿐인, 나의 엄마/ 우리 엄마/ 하늘의 엄마/ 우주의 엄마/ 오늘따라 무척 그립고 보고 싶네요.

제가 죽을 만큼 이승에서 엄마에게 죄를 지었어요.

<은하수공원에서 둘째 드림>

세종 은하수장례식장

엄마!!
제가 하늘나라에 가면 딱 한 번만 보고 싶어요.

형도 가고 셋째도 가고 이제는 내 차례다.

죽음은 순서대로 가야 한다.

봉안당에 내 자리가 있네요.

사연이 구구절절하고 먹먹하다.

어린 시절에 엄마에 대한 글을 다시 올리자 이춘희 (전> 세종시장님의 사모님께 정감 어린 답글을 주셨다.



형이 입던 옷 물려받아 입고, 교복 교과서도 이웃 언니한테 물려받고 아들 다섯 키운 우리
시어머님은 아이들 운동복 떨어지면 덜 닳은 부분으로 버선 만들어 신으셨어요.

옛날에 마을을 지나는 버스는 배차 간격이 서너 시간에 한 대씩이었으니, 버스 기다리느니 걷는 게 빨랐을 겁니다. 혹은 차비 아까워서 걸으셨을 수도 있고요.

그 시절이 그립네요.

저는 장날이면 어머니 흰 고무신을 볏짚에 비누 묻혀서 하얗게 닦은 다음 물 빠지라고 마루 끝에 엎어놓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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