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전태일 열사 50주기를 보내며~

헤게모니&술푼세상 2020. 11. 14. 0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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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일 형~~
세상이 왜 이래! 
왜 이렇게 힘들어?

2020년 11월 13일과 1970년 11월 13일은 신기하고 공교롭게도, 요일과 날씨가 똑같네요. 금요일에 맑은 날씨예요. 솔직히 오늘만큼은 세차게 비라도 쏟아졌으면 얼마나 좋을까, 기대했거든요. 형을 곰곰이 생각하니 마음이 답답하고 억울하고 무거웠거든요. 참으로 세월은 화살과 같이 빠르고 벌써 전태일 열사 50주기입니다.

형과 저는 일면식도 없지만 제가 2년만 빨리 태어났으면 형을 만나지 않았을까, 생각이 드네요. 왜나면 저에게는 천형의 땅 (전라도)고향을 떠나 서울로 가야 하는 필연적 이유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분명히 아버지 죽음과 초근목피는 (수도)서울로 등 떠밀었고 청계천 평화시장에 목적지가 되었겠죠. 유감스럽게 고향 근처에서 1년 6개월 동안 머슴살이를 하고 12살이 되던 해, 탈출에 성공하여 평화시장 봉제공장 2층 다락방에서 저를 발견합니다. 

1972년 11월 3일 낮, 무작정 영등포역 직업소개소에 찾아가니 그러더군요. 너는 별 볼일 없는 무학이다/ 청계천으로 빠져라/ 3~6개월은 무보수다/ 다만 주인장 말을 잘 들으면 용돈은 줄 것이다/ 아무 연고도 없는 서울에서 밥을 먹여준다는 그 자체만라도 감지덕지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평화시장 봉제공장에서 미싱을 박는 누나들의 보조역활을 했죠. 아무리 제가 키가 크다해도 굶주림으로 살아온 어린시절 때문에 힘이 달리고 실수투성이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사장과 윗사람들은 무지막지한 욕설과 폭력을 마다 하지 않았습니다. 하루하루 12시간 작업은 기본이었고 한 달에 고작 쉬는 날은 셋째 주 일요일 뿐이었죠. 휴일이 오면 수표교 다리를 찾아 서울 하늘 아래 어디엔가, 있을 엄마와 막내가 그리워 눈물깨나 훔치곤 했습니다. 

하늘아~ 
달님아~ 
엄마기 너무 보고 싶어? 

청계천 봉제공장의 처참한 이야기는 블로그에 자세히 언급하였기에 이만 글쓰기를 멈춥니다만, 혹여 태일 형께서 단도직입으로 50년 전과 오늘의 노동자의 삶과 행복지수를 물어 오신다면 저는 솔직히 별반 다르지 않는다고 대답할 것 같습니다. 그때 노동자는 처참한 생활이었지만 지금은 비참한 생활을 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답게 살고자, 좀 더 나은 생활을 하고자, 내 죽음을 헛되지 말라고 했던 형의 외침이 현재도 엄연히 공존한다는 겁니다.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는 발전했지만 현사회의 불평등과 불공정은 여전하고 강자는 불균형과 무질서 따위는 아량곳 않고 제로섬에 목을 내밀고 약자는 균형과 질서를 지키며 정글의 법칙을 따르는 현실입니다. 더군다나 사회지도층과 위정자로 일컫는 자들께서 양심과 도덕은 실종되고 부실하니, 어디 명분과 설득에 염치가 있겠습니까? 때문에 우리 국민들은 혐오와 불신은 만연하고 심지어 좌절과 비극으로 치닫습니다. 오죽하면 가진 놈은 비아그라 흥분제에 희희낙락하며 살고, 없는 놈은 기생충의 구충제로 생사가판처럼 산다고 말하지 않겠습니까? 

태일 형~~
70년 대 우리의 노동자들은 먹고 마시고 즐기는 것은 부족하고 허접했지만 경쟁사회의 일등주의는 아니었습니다. 최소한 기울어진 운동장도 없었고 견고한 사다리를 거둬 치우지는 않았습니다. 열심히 일한 만큼 부의 축적을 거머줜다는 멋진 선전문구가 있었습니다. 반대로 21세기를 사는 노동자는 살면 살수록 가난의 메시지만 눈에 아른거립니다. 그래도 그 시절에 우리 공돌이와 공순이는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보였는데, 한번도 경험하지 않는 나라를 이끄는 이 정부를 보면 무너지는 하늘에 손바닥으로 가릴려고 발버둥 칠 뿐입니다.

태일 형~~
노동자를 위하고 존중하는 새로운 세상이 곧 오겠지요. 형께서 우리 2.000만 명의 노동자의 양질이 삶이 개선된냐고 다시 물어오신다면 두 가지는 긍정적으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초인류 1등기업 삼성에 노조가 생겨요. ㅎㅎ
중대재해처벌법은 법적효력 단계입니다. ㅋㅋ

50년 만에요.
전태일 형~~

지켜봐 주세요.
우리 노동자를
정의당에게 힘? 





만평/ 민중의 소리

(당시 동아일보 기사)

당시 동아일보 고바우 4컷짜리 그림판

(헤게모니 만평)

JTBC 밤샘토론 때문에 전태일 일대기를 심도 있게 그리지 못했다. 내게 내년 11월 13일이 보장된다면 전태일 열사의 혁혁한 업적을 그려 볼 것이다. 전태일 평전을 읽은 사람으로서 말이다. 나는 10년 동안 해마다 전태일 형을 떠올리며 글을 써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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