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아부지 내 아버지....

헤게모니&술푼세상 2010. 10. 25. 0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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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생각해 본다
아버지가 살아계셨다면 지금 나의 삶은 어떤 모습일까?
아버지!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르는 세월이 짧은 만큼 이제는 아버지의 모습과 기억은 자꾸 내 머릿속에 하얀 지우개가 되어가고 있다
아버지의 향기와 냄새가 그립다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초봄 어느 날이었다
아버지는 나를 부르시더니 당신이 그렇게 애지중지하셨던 귀한(애마) 삼천리자전거 뒷 자석에 타라고 하셨다
그 당시 우리 형제 중에 아버지 허리품을 안고 자전거를 탄다는 것은 파격적인 행보였고 특혜였다
아버지는 무척 엄격하고 보수주의적인 사람으로서 말 한마디에도 격조가 계셨고 행동에서도 절대 빈틈이 없는 근엄하고 무서운 아버지였다
냉혈한 승부사 기질을 가진 절도 있는 아버지셨고 호불호가 정확하셨다
그것은 직업의 흔적에서도 잘 나타난다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아버지는 경찰관이셨다
말단 순경이 아니라 직급이 높은 경찰이었다
내가 너무 어린 탓일까? 아쉽게도 나는 경찰제복을 입은 아버지의 모습을 기억할 수가 없다 
사진을 통해서만 알 수 있고 볼 수 있었지만 잘생긴 외모와 큰 키에 제복이 잘 어울리는 아버지의 멋진 모습이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아버지의 깊어가는 병마는 경찰제복을 스스로 벗게 만들었다
하는 수 없이 아버지는 병든 몸을 이끄시며,  고향 면사무소 옆에서 郭 ㅇㅇ대소서를 운영하셨다 
가장이라는 뭉클한 이름으로...
우리를 먹여 살리셨다
등 뒤에 나를 태운 아버지는 목적지를 말해주시지도 않은 채 자전거를 묵묵히 운행하셨다
얼마쯤 시간이 흘렀을까
나는 자전거가 가는 방향이 아버지가 일하시는 근무처라는 것을 단박에 알 수 있었다
대소서 문을 열고 들어선 아버지는 연탄불 화력을 높이시며 나를 당신 책상에 앉아 보라고 손짓하셨다
나는 금세 주눅이 들었고 떨리는 마음으로 조심스럽게 아버지 의자를 만지작 거릴 뿐이었다
어정쩡하고 안절부절못한 나를 보고 아버지는 네게 말씀하셨다
"남자가 당당해야지 쭈뼛거리고 망설이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처음으로 나의 꿈을 물어오셨다
 너는 커서 뭐가 될 거니?
지금도 정확히 기억하는데 나는 아버지께 큰소리로 말을 했다
 아버지요 저는 돈 많이 버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그것이 뭔데?
빵공장 사장입니다!
부자가 돼서 빵 많이 먹고 싶습니다!
하필 왜 빵공장이야?
아버지! 엄마 때문입니다
엄마가 빵 훔쳐먹었다고 나만 많이 때리십니다
실은 그때 엄마는 동네에서 구멍가게(점방)를 하시고 계셨다
왜 그랬는지 모르지만 엄마는 진열해 놓은 빵의 숫자가 모자라면 어김없이 둘째인 나를 의심했고 득달하셨다
오죽하면 누나들이 깔깔대며 다리밑에서 주서온 아이라고 놀려댔다. 장남 있고 셋째 있고 막냇동생도 있고 누나들도 있었는데 말이다
아버지는 내 말에 어이가 없으셨는지 아무 표정 없이 미소를 내 보이셨다
그래! 꿈을 키우고 희망을 성취하려면 공부를 많이 해야겠지ㅡ
아버지는 내손을 이끌며 학교 교무실, 지소 <파출소> 면사무소. 등을 두루 다니시며 구경시켜 주셨다
아버지는 군, 면, 리. 를 통틀어 꽤 이름이 나 있었고 지역에서 알아주는 확실한 유지였다
내가 똘똘했는지 똑똑했는지 모르지만  나는 내 존재가 郭 ㅇㅇ아버지의 자식이라는 사실에 엄청 기분 좋았고 우쭐했다
기분 좋은 생활은 정확히 3년은 이어갈 수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버지는 내손을 끌어당겨 당신 바지주머니에 넣으시며 말씀하셨다
춥다!
머리를 최대한 숙여라!
아버지 허리를 꼭 잡아라!
나는 아버지 말씀대로 와락 아버지를 끌어안았다
아버지 품 안이 그렇게 포근하다는 걸 처음 느꼈다
아버지는 아무 말없이 하얀 사탕 한 개를 내미셨다
아~아~ (십리오다마 ) 사탕이었다
{ 깨알 하나가 속 깊이 박혀있는 하얀 사탕으로서 이빨로는 절대 깨트릴 수가 없고 한번 빨기 시작하면 장장 4킬로를 걸을 수 있다 해서 붙여진 보릿고개 사탕임}
아버지가 주신 사탕 한 개를 입에 물고 나는 왠지 모를 들뜬 마음으로 행복에 젖어 있었다
그날 하루 아버지와 나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긴 시간을 공유하며 많은 얘기를 나눌 수 있었고 아버지의 마음을 읽을 수가 있었다
장차 십리오다마 사탕처럼 내 삶이 고뇌와 번민과 인내의 연속이 될 줄은 꿈에도 모른 채 말이다
아버지의 넓은 어깨는 점점 좁아져가고 있었다
덧없이 흘러가는 시간만큼 아버지 병세는 깊어만 갔고 아버지의 오랜 병마는 우리 집 전재산을 야금야금 갉아먹고 있었다
부농은 아니었지만 넉넉하고 풍요로운 집안이었다
긴병 앞에 장사 없고 시간이 없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풍비박산이라는 말이 우리 집 여기저기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아버지는 우리 집 한탄과 신세소리를 들었을까?
1971년 봄이 오려면 아직 먼 추운 어느 날 밤 아버지는 우리 가족을 불러 모았다
둘째 누나 통곡소리가 아직도 생생하다
기종아!
지금 아버지가  돌아가실 것 같아!
빨리 안방으로 건너와 봐!
누나는 몇 번이고 나를 향해 소리쳤지만 나는 곰짝달싹을 할 수밖에 없었다
죽음의 무서움보다 그냥 아버지의 죽음을 보고 싶지 않았다
불효자 같은 놈..
끝내 나는 아버지 임종자리를 지키지 않았다
아버지께서는 유언을 남기셨는데 엄마에 대한 미안함.. 자식 잘 키우라는 당부와 함께.. 눈을 감으셨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아버지는 마지막 숨을 다할 때까지 둘째야~ 둘째야 ~나를 찾으셨다고 한다
세세히 말할 수 없지만 나는 아버지와 모든 면에서 빼닮아 있다
우리 형제(3대 자손) 중에 희한하게도 A형 혈액을 가진 사람은 아버지와 나뿐이다
우리 집 초가지붕 위에 아버지 흰 저고리가 던져졌을 때 아버지의 영혼은 그렇게 멀리멀리 우리 곁을 떠날 채비를 하셨다
요량잡이의 구슬픈 상여소리는 산천을 울리고 있었다
~·북만상천 가신님 아! 어느 때 오시려나 어허야 뒤야 어하 뒤야 어기어차.. 이제 가면 언제 오나 산도 넘고 강도 넘세 어허야 뒤야 어기어차~
애달픈 곡(哭) 소리에 나는 그만  울컥했다
아버지!  아버지요?  잘 가세요!
아버지는 당신이 누울 땅 한평 남겨놓지 않으시고 그렇게 허망하게 이승을 등졌다
해가 뉘엿뉘엿 질 때까지 나는 형과 함께 아버지 묘소옆에 앉아 이제 닥쳐올 세상살이 모진풍파를 걱정하고 인내하고 있었다
이제 아버지와 추억들이 가물가물해지는 것처럼 40여 년의 세월이 흘러갔다
어느새 형과 나는 지천명에 들어섰다
살아오면서 아버지의 죽음을 결코 원망하지 않았지만. 우리 형제들이 너무 힘들고 어려운 세월을 살아온 것은 부인할 수 없다
무엇보다 너무 어린 나이에 아버지의 죽음을 목격했기에, 하루하루 암덩어리와 사투 벌이고 있는 형님을 생각하면 너무나 가슴 아프고 눈물이 앞을 가린다
이제는 살만하니까/
세상 좋아지니까/
또 (?) 길을 재촉하는가?
형님은 아버지같이 절대적인 존재이다
내 아버지처럼 황망히, 절대로 보낼 수는 없다
힘내라!  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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