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을 끝내고 집에 오니 친구들의 전화가 번갈아 옵니다
아직도 콜록콜록이냐
덩치값도 못한 놈 나와라
삼겹살에다 소주 한 잔 하면 감기 한방에 떨어질 거야
나는 말합니다
친구야 고맙지만 안돼
몸 상태도 안 좋고 내일 이른 아침에 먼 곳으로 배송 가야 돼
너희들끼리 먹어
나는 몇 번이고 거절했지만 징그럽고 찐득이 같은 친구들은 계속 성화입니다
안 나오면 우리 집까지 쳐들어 온다고 합니다
나는 하는 수 없이 두 손을 들었고 혼자 볼멘소리를 합니다
~그래! 아픈 놈한테 고작 삼겹살이 뭐야
값비싼 보양식을 사주면 어디가 덧나냐?
내가 좋아하는 장어라든가
장뇌삼이 들어간 15만 원짜리 닭요리 정도는 돼야지
돌대가리 같은 놈들^^
나는 투덜거리며 밖으로 나왔습니다
그렇지만 한편으론 걱정스러운 일이 생길 때면 항상 챙겨주고 보살펴주는 친구들이 있다는 사실에 한 껏 업 up 된 내 기분만은 숨길 수가 없었습니다
나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역시 알토란 같은 친구들입니다
내 의중을 꿰뚫고 있었습니다
장어를 먹자
닭요리를 먹자
친구들의 의견이 분분합니다
나는 친구들의 성의와 감동을 충분히 알았기에 그만 정리를 해야 했습니다
친구야 그 음식들은 내가 나중에 쏠게
간단히 삼겹살에 소주 한 잔 하자
이렇게 해서 우리 4명 친구들은 주변에서 제법 맛있기로 소문난 삼겹살집을 찾아갔습니다
삼겹살 4인분 하고 맥주 소주를 시켰죠
그런데 잠시 후 생각지도 못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식탁에 턱 하니 내려놓은 갖가지 밑반찬들 때문이었습니다
콩나물. 고구마 맛탕. 나물무침. 어묵볶음. 물김치. 김치 5조각. 마늘 4 등분해서 한 접시
고추. 잘게 썰어놓은 한 접시, 계란찜, 그리고 양파. 부추, 파, 들이 장화 신고 건너간 파채 무침이 전부였죠
무엇보다 눈에 띄게 인상적인 것은 상추를 담는 바구니는 사라지고 접시에 놓인 상추(6개) 깻잎(5장)입니다
셀 수가 있었죠
아니 아무리 채소값이 金값이라고 하지만 이건 아니잖아 너무하잖아
4명이서. 누 구입에 풀질하라고!
젠장 두 번만 쌈 싸 먹으면 나머지 고기는 뭐로 먹으란 말인가?
정말이지 주인장이 야속해 보이고 융통성이 없는 사람 같았습니다
하기사 상추 더 달라고 하면 되겠지 뭘.....
그런데 말입니다
쌈을 싸서 먹는 음식을 먹다 보면 꼭 이런 사람이 있지요
남을 전혀 배려하지 않고. 상추(1) 하나 위에다 깻잎 한 장 포개어 2장으로 쌈 싸서 먹는 인간들 말입니다
우리 친구 중에도 있더군요
얻어먹는 주제에 나는 뭐라고 말할 수는 없고, 속은 열불 나 헐헐 타 들어가고 미치겠더라고요
이젠 접시 위에는 상추 한 장이 남았어요
세상에 이럴 수가 있나요?
그 한 장 남은 상추를 집어 고기에 싸지 않고 그냥 입으로 직행하는 놈도 있네요
천벌 받을 놈..
벼락 맞을 놈..
나는 눈물을 머금고 간장이 넘쳐나는 파채 무침에 삼겹살을 찍어 먹어야만 했어요
이제 또다시 상추를 추가 주문하니 이번에는 딱 상추(5개) 깻잎(3장) 총 (8장)입니다
그런데 친구 그 자식이 또 상추 깻잎 2장을 포개서 입에 넣으려고 하네요
울화통이 터져 미칠 것만 같았어요
그래 내가 참고 먹지 말자
먹는 것을 가지고 치사하게 굴지 말자
먹고 싶은 것을 맘대로 못주는 주인이나 그걸 더 먹겠다고 주접을 떠는 우리 모습들이 모두 불쌍해 보입니다
그래도 먹을 것은 최선을 다해 먹어야만 했습니다
이번에는 내가 나섰죠
접두사를 붙이고 죄지은 사람처럼 연신 머리를 숙입니다
아주머니 정말 죄송하고 미안해요
마지막으로 부탁할게요
상추 좀 많이 좀 주세요
아주머니가 상추를 내려놓으면서 한마디 합니다
요즘 상추가 워낙 비싸서요
죄송해요"
어휴! 그렇게 사정하고 애원했건만 이번에는 달랑 상추만 (5장)입니다
친구들은 작금의 현실을 아는 착한 놈들입니다
옛날 같으면 이 식당을 뒤집어엎어버리고 말았겠죠ㅡ
우리는 아무 말도 못 하고 서로 얼굴 한번 쳐다보고 상추 한번 쳐다봅니다
나는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었죠ㅡ
아무 망설임도 없이 가위를 들고 상추 4등분을 해버렸습니다
하~하~하~ 미니 상추 20장이 금세 만들어지더군요
김 싸 먹는 것처럼 꾸억 꾸억 먹었죠
식당 안에 있던 사람들 눈이 휘둥그레 해지더니 어이가 없는지 그냥 웃더군요
이렇게까지 주접을 떠는 행사를 벌었지만 상추는 더 이상 우리 곁에 나오지 않았답니다
나는 식당을 나오면서 씨부렁(일갈) 거렸죠
2명 와도 11장 4명 와도 11장 그러면 10명도 11장입니까?
앞뒤가 콱 막혀서 장사해 먹겠소
바로 6시간 전 삼겹살집에서 상추 때문에 상처받고 열받아서 이렇게 두서없이 글을 씁니다
사진을 찍어 아고라에 올리려다 그만둡니다
그곳 진상들한테 혹독하게 데인(댓글) 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암튼 어젯밤
나는 삼겹살 한번 먹다가 별꼴 험한 꼴을 경험했던 어리둥절하고 어안이 벙벙한 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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