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체국장의 슬픈 이야기를 전하기 전에
저에 개인적인 과거사를 먼저 공개합니다.
30여 년 전 저는 (옛 지명) <연기군 서면 봉암리> 봉암 우체국에서 약 1년 동안 근무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 김덕권이라는 막역한 친구가 우체국 차석으로 근무했기에 나의 신분 세탁은 식은죽 먹기였죠.
학력은 고졸로 속이고 우체국 배달을 시작했어요.
지금은 공공기관 우체국이 택배회사로 전락한 측면이 없지 않지만 그때는 절절하고 훈훈한 사연들이 가득한 손편지가 전부였어요.
제 배달구역은 성제리- 신대리- 고복리- 쌍류리
4곳 정도였는데 아침 일찍부터 각종 편지와 간행물, 세대별 공과금, 외 다수를 분리하고 나면 오전 10시쯤 오토바이로 배달을 하게 됩니다.
시골을 다니다보면 시골 사람들의 인심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친절하고 배려심이 몸에 배어 있었어요.
까막눈이 셨던 할머니에게 편지도 읽어드리고 영어로 된 보낸이 주소는 밤새워 달달 외워 말씀드리고 했죠...
새참 먹고가라/
점심같이 먹자/
막걸리 한잔해/
어른들 말씀에 마냥 사양하는 것이 실례가 되는 것 같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마지막(배달) 끝물에는
술도 얻어먹고 한숨 자기도 했지요.
우체국의 배달꾼은 출근은 정확해도 퇴근은 정해지지가 않아 가능했던 일이죠.
가장 기억이 남는 것은 고복리 근처 산 중턱에 비구니 스님들만이 수행하는 절이 있었는데 워낙 비탈지고 시간이 걸려 일주일 단위로 한 보따리를 싸들고 올라가면 예쁜 스님들의 깔깔 대는 웃음소리가
참으로 청아했고 아름다웠어요.
충남지역 감리교 청년회장이라는 타이틀을 잃을 정도로 절간이 맘에 들었고 설레었답니다.
무엇보다 허우대가 멀쩡한 젊은 사내가 나타나니
그놈의 인기는 하늘을 치솟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나중에는 비구니 누님이라고 허물없이 농담은 주고받을 정도가 되었지요.
그런데 그 절에서 키우는 대형견에게 다리를 제대로 한방 물고 난 후 절간 밑에 편지 묶음만 남겨둔 채 줄행랑치기에 바빴죠. 아마도 개 노무 새끼가 부러움과 질투심이 많아서 나에게 심술(멍멍)을
부린 거죠.^^
비구니 누님들은 놀다 가라고 소리쳤지만....!!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ㅡ♡♡
이런 재미나는 사연들을 안고 어느 정도 직업에 재미를 부치고 사는데 어느 초겨울날이었어요.
도로가 상당히 미끄러워 한 발을 땅에 질질 끌며 오토바이를 타야 하는 악조건 속에 왜 그날따라
성제리 구멍가게에서 동네 어른분들이 주신 막걸리를 주는 대로 꿀꺽꿀꺽 마셔대는지 모르겠어요.
곧 다가올 당황스럽고 끔찍한 상황이 닥쳐올 줄을 꿈에도 모른 체 말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조심스럽게 오토바이를 타고 봉암 초입에 들어서니
내 몸 따로/ 운전 따로/ 한참 동안 오토바이가 비틀비틀거리더니 정확히 연봉 초교 앞에서 어느 차량과 여지없이 추돌하고 말았어요.
다행히 제가 헬멧을 썼기 망정이지, 저는 약 10여 미터를 날아가 내동댕이 쳐지고 다리 곳곳에는 피가 철철 흐르고 주변 가게를 운영하는 사람들은 우르르 몰려와 구경하고 난리법석이 아니었어요.
그런데 차마 입을 다물수 없을 만큼 놀라운 광경이
내 눈앞에 펼쳐집니다.
대우 로열 프린스 차에서 나와 내 곁으로 다가선
젊은 여성과 남성이 있었는데 하필 그 여성이 내가 한동안 사랑했던 교회 여동생이었습니다.
나도 당황하고 동생도 당황하고 한동안 정적과 침묵만이 맴돌고 있는데 역시 여자는 순간의 판단이 지혜롭고 용감하다는 걸 느꼈습니다.
곽 선생님 괜찮아요..
병원에 빨리 가보세요.
그러면서 동생은 남자 친구의 입을 틀어막고
그냥 가자고 재촉하더군요. 근처 파출소에서 출동한 경찰에게도 아무렇지 않다며 처벌 같은 것은 바라지 않는다며 내 어깨를 토닥거리며 사라지더군요.
뒷 범퍼가 심하게 찌들어졌는데도 저에게 따뜻한 눈빛을 주고 떠나는 동생을 보면서 저는 창피한 것은 둘째치고 나는 반드시 지옥불에 떨어질 거야!
괜히 눈물이 글썽거리고 금방이라도 눈물이 쏟을 것만 같은데 우체국에서 뛰어나온 국장님과 직원들은 절뚝거리는 나를 데리고 우체국 공간에 앉혀놓고 득달하기 시작했습니다.
너 술 먹었지..
조사와 심문을 넘어서는 해병대 출신 국장님은 의자를 들고 내 머리를 치려고 했고 그 좋던 친구도 등을 돌린 상태였습니다. 잘못했기에 살살 빌었지요^^
그런데 사람들의 뇌구조의 상태는 참 이상해요.
아무리 제가 지은 죄가 많지만 내 다리에 피가 흐르고 온몸은 멍투성인데 그것은 아량곳 않고 저의 저자세와 굽신거림에 희열을 느끼는지 계속해서 비웃음으로 지청구를 하더군요.
끝내 경위서를 쓰라는 국장의 성화에 제가 어떤 선택을 해야만 했을까요?
X 까요.
그만 두면 되잖아!
눈깔이 뒤집어버렸지요.
내가 욕 쳐 먹을 만큼 죽을죄를 졌어!!
배달하는 너희들도 술 먹고 배달 안 했어!
산전수전 겪으며 자존심 하나로 버티며 살아온 인생인데 자꾸 지랄발광을 떠냐. 친구도 싸잡아 비난하며 우체국 문을 박차고 나와버렸지요?
쫓아오면 다 죽어....!!
그래 내 주제 파악을 알고 살자.!
모피업으로 다시 돌아가는 거야.!
포스트맨은 벨을 두 번 울리지 않아.!!
돌이켜보면 잠시 별정직 공무원 생활로 인하여
많은 인생공부를 했고 지금 여기까지
온 것 같습니다....
참 우체국장의 웃픈 이야기는 언제 하냐고요. ㅋㅋ
반드시 내일 안으로 조치원 유래처럼 해드리죠. ㅎㅎ
당장 술판 놈의 그것이 알고 싶지 않으세요..
사고의 중심에 있었던 교회 여동생?
세종시 모처에서 잘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현재 봉암 우체국장 하고 가끔 술잔을 기울이죠.
아버지의 성격을 안 닮아 착하고 성실하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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