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사랑하는 형에게~~또 다시

헤게모니&술푼세상 2018. 2. 25.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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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그랬던 것 처럼, 설명절을 맞이하여

형이 잠들어 있는 세종시 은하수공원을 찾았다.

오늘 따라 유난히 쓸쓸한 여운이 감돌고 적막이 휘감는다.

 

형! 나 왔어...

그동안 적적했지.

 

형의 영정사진을 물끄러미 "올려다" 보니

그만 팔다리가 맥없이 무너지는 느낌이 오고

잠시, 아련한 추억의 노트에 젖어들고 만다.

 

눈물젖은 곰보빵.....

형과 나와의 소중한 추억이다.

 

나는 어릴적부터 형의 그림자를

벗어날 수 없듯이 형을 의지하고

믿고 따랐다.

 

우리는 살아도 같이 살고 죽어도 같이 죽자고

수없이 맹세하고 다짐할 정도로 형이 좋았다.

내 맘을 잘 알고 있었던 형은 싫은 내색은커녕

단 한번도 내 곁을 떠나지 않았고 감싸 안았다.

 

혹독하리만큼 가난과 사투를 벌었던 그 순간에도

전국의 공사판를 전전하며 밥세끼에 목을 맬때도

피골이 상접한 모습으로 길바닥에 내팽겨졌을때도

 

두살 터울인 형은 나를 버리지 않았다

그때 우리 나이는 10대 전후반이었다.

 

먹성을 밝혀야 할 나이에 세상 물정과 사투를

벌이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형을 잊지 못한다.

구로동 단칸방 시절이다.

 

갑자기 나는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고

급기야 드러누웠다.

 

순전히 굶주림과 배고픔때문이었다.

실직 상태였던 형은 백방으로 뛰었다.

 

10여일만에 집에 돌아온 형의 양손에는

약봉지와 곰보빵이 가득했다.

 

 

나는 형의 그간의 고생을 묻지 않았다.

 

마음이 아플까 봐!

큰 울음도 참았다.

 

나는 볼이 터지도록 곰보빵을 밀어넣으며

다짐했다.

 

비굴 하지말되 구걸하지도 말자!

어떻게든 가난만큼은 벗어나 보자!

 

 

말이 씨가 되었을까?

 

질풍노도를 헤치며 무소의 뿔처럼 살았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일했다.

차츰 허기진 배고픔에서 벗어나고 있었다.

험하고 더럽고 위험한 3D업종의 덕택이다.

 

그러나 가난 탈출에만 신경썼지.

몸 살피는데는 소흘했던 것 같다

그것이 미치게 서럽고 후회스럽다...

 

호사다마/

인생무상/

화무십일홍/

 

우리네 인생을 보았다.

 

 

형이 세상을 떠나기 몇시간 전에 형의 부름을 받았다.

 

곰보빵이 먹고 싶다.

몇개 사올 수 있겠지.

형ㅡ

왜 그래

금방 달려간다구....

 

나는 형 앞에 빵을 놓고 40년만에 그토록

하염없는 눈물을 쏟아낸 적이 없었다.

형은 말이야.!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우러러" 보는 존재였어.

그게 고맙다구.!

 

형은 힘겹게 빵 한 조각을 삼키며 말을 이어갔다.

 

빵 중에 곰보빵이 좋았어?

그 시절을 잊지말고 살아!

 

동생들 잘 보살피고 엄마 잘 모셔라......

(⛆?⛈?????)?

형이 세상을 떠난지 정확히 6년하고 2개월이다.

절절한 그리움과 보고싶은 애달음은 가슴속 깊이 담아두겠다.

 

사랑하는 형..

 

형보다 조금 더 살다보니 간절히 느끼는 게 있어.

삶은 작은 것들로 이루어지는 것 같아~

욕심과 탐욕에 빠져들지 않을거야~

 

깨끗함ㅡ

더러움ㅡ

 

기쁨ㅡ

슬픔ㅡ

 

이것들은 마음먹기에 달려 있듯이

<일체유심조> 정신으로 살아갈께...

 

 

편히 쉬어...ㅡ .

 

 

Ps

둘째 누나집에서

은대구(생선)를 처음 먹었는데

자꾸 형이 생각나고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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