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이장님과 낮술/ 내 친구 죽음....

헤게모니&술푼세상 2023. 7. 29.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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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번 나의 블로그에 내 몸의 적신호를 알렸지만, 이처럼 극심한 우울증과 불면증이 찾아온 적은 없었다.

정녕 기억하기도 싫은 최악의 폭우와 폭염에 온몸을 적신 7월은 나에게 있어 비참하고 잔인한 시간이었다.

지병 <천식>이 있었지만 심폐소생기와 옆에 가족들만 있어서도 거뜬히 몇 년은 살고 갔을, 셋째 동생을 생각하면 몸서리치게 아픔과 슬픔이 다가오기 때문이다.


이점 때문에 물밀듯이 나는 잠 못 이룬 밤이 계속되고 있다.

그래도 사는 사람은 살아야 한다고 몸을 추스르며 내 사업에 매진해 보지만 인간이기 때문에 쉽게 무너지고 절망의 연속이다.

이렇게 중구난방으로 사는 내 마음을 알아차렸는지, 조치원 침산 1리 신흥균 이장님께서 어젯밤에 술자리에 나를 부른다.

세종시에서 43년 동안 형님과 동생으로 인연의 끊을 놓지 않고 사는 사람이 수백 명이 넘지만 내가 힘들고 외로울 때 나를 잊지 않고 나에게 관심을 주며 챙겨준다는 것은 그리 많지 않고 드문 현상이다.

나는 셋째 동생이 갑자기 죽었을 때, 직계가족이 아니라는 이유로 어떤 누구에게 연락하지 안 했다.

반대로 나 라는 존재는 남의 형제와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장례식을 찾아 진심으로 명복을 빌었다.

그런데 나도 모르게 침산동 1구 이장님과 김민정과 양진복, 그리고 시의원 한 분께서 셋째의 장례식에 노크를 했다.

내가 사는 동안 이분들은 절대로 잊지 않고 기억할 것이다.

이장은 나보다 두 살 어린 동생이지만 단 한 번도 반말하지 않는다...

우리 이장님은 의리 있고 싸가지 있어 내가 술값을 미리 계산했다.^^

2차까지 술대접을 하겠다는 내 말에 이장님은 내일 아침에 지역봉사하는 <100여 명> 회원들이 침산동 마을과 주변도로를 깨끗이 치운다며 이쯤에서 술자리를 마무리하자면서, 톡 쏘는 물방울 소리를 들려준다.

형님! 건물 주위도 청소해 줄게요....

아이고...

그리 안 해도 되는데, 내 미소를 감추며 속 보이는 짓을 했다....^^

어젯밤에 통닭을 얻어먹는 것이 신경 썼는지 이장님은 나에게 오전 12시쯤 낮술을 하자고 전화를 보낸다.

오늘도 나는 아침도 거르고 침대에 누워 멍하니 천장만 쳐다보고 있는데, 따르릉~~~

이장님의 부름에 성의가 괘씸하여 후다닥 세안만 하고 만남의 장소 봉산식당을 찾았다.

봉산식당의 이전 간판은 대호식당이었다.

대호식당은 나의 중년시절에 몸 바쳤던 곳이며 여주인장과 둘도 없는 친구였다.

2000년 초반, 대호식당 친구는 조치원 상리 다리를 넘어 청주해장국 <24시간 영업> 식당에서 지배인처럼 총책임을 도맡아 하는 종업원이었는데, 우리 삼 형제가 새벽 2시쯤 서울지역에 어묵배송을 마치고 나면 하루도 빠지 않고 청주해장국을 찾아 친구와 함께 뼈다귀 해장국울 먹으며 아침을 맞이하곤 했다.

친구의 마음이 대평양 바다와 같았기에 우리 형제는 대서양 바닷물로 대접하는 그렇고 그런 사이었다.

저녁운전을 위해 끼니 거르지 말라며 해장국을 바리바리 싸주며 격려와 응원을 마다하지 않는 착한 여성이었다.

심성이 곱고 낙천적인 성격 때문에 친구는 나중에 직접 본인 식당사업을 했는데, 해마다 일취월장했고 끝내 조치원에서 맛있는 식당으로 소문이 났고 마침내 우리 집에서 200미터 떨어진 곳에 건물을 짓고 불황을 모르고 식당업에 대박을 쳤다.

나는 가끔 친구집을 찾아 밥과 술을 먹으며 우리는 고생을 머리와 허리에 이고 살았으니, 이제는 여유를 가지고 재미난 인생을 보내자고 다짐을 했는데, 1년 전 어느 날에 오토바아를 타고 가다가 심한 교통사고를 당해 죽다 살아나 집에서 재활치료를 받고 있었다.
  

그런데 몇 개월 후에 대호식당의 간판은 사라지고 소식이 뚝 끊어졌다.

오늘 이장님과 점심을 하는데 봉산식당에서 친구의 안타까운 소식을 들었다.

곽 사장님도 무심하시지요?

대호식당 여주인은 6개월 전에 세상을 떠났어요.

옆집처럼 사시면서 그걸 모르셨냐고요.

나는 올 초에 친구와 전화통화가 있었는데, 재활치료에 진전이 있다는 것을 들었기에 안심이다 싶어, 무소식이 희소식처럼 생활했는데 무심하게 가버리다니....

금세 눈물이 핑 돈다.

오토바아 사고 나기 직전에는 친구와 단둘이 만난 적이 있는데, 그녀는 내게 말했다.

내가 태어나서 베트남 외국여행을 처음 가봤는데 너무 좋더라.

그래 너도 나도 힘든 삶을 징그럽게 했고, 지금은 어느 정도 부를 쌓고 사니, 죽기 전에 실컷 여행 다니자.

네 남편 없으면 나랑 같이 여행도 즐길 수 있다며 농담과 실언을 하기까지 했었는데.....


네가 가는 길을 전혀 몰랐어...

정말 미안해...

그러면서 친구의 가족들에게 서운함을 감출 수 없었다.

친구의 휴대폰에 저장된 주소록에 내 이름이 선명하게 기록되어 있는데....ㅠㅠ  

낮술을 먹고 집에 돌아와 집사람에게 자초지종을 얘기했더니, 그 언니 너무 안 됐어!

엄마 장례식에 오셨고 딸내미 결혼식에도 참석했던 마음씨 고운 언니였는데, 허망하게 돌아가셨다니, 매우 안타깝고 불쌍해....

나는 집사람에게 딱 한마디만 했다.

사람 팔자 아무도 모른다.

가고 싶은 곳, 먹고 싶은 것, 즐기고 싶은 곳,  입고 싶은 것, 가지고 싶은 것, 마음껏 득템 <쟁취>하며 살아!!

내 간곡한 말에 집사람은 텔레파시(Telepathy)가 통했는지 지금 내 계좌에 뜬금없이 여름 휴가비를 보내준다.

사람 사는 게, 알다가 모르겠다!.
술 한잔 하러 밖으로 나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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