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양평군 전원주택에서 불멍

헤게모니&술푼세상 2024. 4. 8. 0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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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도 <전원생활> 이런 날이 다가올까?

건강이 상태를 보면 회의적이고 비관적이다.

      <형님집>

가파른 장원사 걷는데 저질체력이다.  
입에서 신물이 날 정도록 헉헉 댔다.

장원사와 용문사에서 11000보 걸음

차가운 막국수 맛 때문에 속이 뻥 뚫림. 세종시는 막국수 잘하는 곳이 없어.ㅜㅜ

봄기운이 완연한 토요일입니다.

전날 과음한 탓인지 아침에 일어나는 게 힘이 들었지만 예전에 1박 2일"나들이" 약속을 어길 수 없어 우리 집 5층 옥상에 올라가 술도 깰 겸 몇십 번을 빙빙 돌았습니다.

나의 마스코트와 길잡이라고 부르는 양파는 내 심정을 아는지 빠른 발거움을 재촉합니다.

얼른 땀 좀 빼고, 아빠가 가는 길을 맘 편히 다녀오라는 신호처럼 양파는 신통방통한 반려견모습을 보여줍니다.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옆집에 사는 형님의 승용차를 올라타고 양평으로 냅다 달렸습니다.

저와 형님과의 관계는 강산이 세 번 바뀔 정도로 막역하고 오래된 인연입니다.  

우리는 눈빛만 쳐다봐도 서로가 무엇을 하고 싶고 어떤 것을 원하는지 단박에 알 수 있을 만큼 각별하고 소중한 사이라는 것은 세상천지가 다 알죠.^^

무엇보다 형님은 온화하고 자상한 성격으로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을 만큼 자신을 다스리고, 마인드 컨트롤을 잘 활용하는 정직하고 근면한 사람이죠.  

30년 넘게 쌍용제지에서 근무를 했고 지금은 나이 때문에 어쩔 수없이 중소기업에 몸 닫고  있지만 아직도 한우물을 파듯이 종이를 자유롭게 만지는 <제지> 그만의 강직하고 투철한 직업군입니다.

형님과 저는 나이가 한 살 차이밖에 나지 않지만, 친형처럼 깍듯이 대하는 것은, 그동안 형님도 저 못지않게 힘든 여정과 모진 풍파가 닥쳐왔지만 참고 인내하는 삶을 선택했기에, 아직까지 호적에는 빨간 글씨라는

"전과"☆☆☆☆(☆)가 없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나는 형과 술잔을 비우면 간혹 넋두리를 하는 버릇이 있는데 국가는 우리들에게 교도소의 담벼락을 등지며 착하고 깨끗하게 살아왔기에, 표창장과 다달이 25만 원의 격려금을 줘야 한다고 말입니다.^^

조치원에서 출발한 지 두 시간을 넘어서니 양평 강상면이 눈에 보이더군요.

형님께서 먼산을 가리키며 저쯤에 김건희 여사님의 선산과 땅이 있다.

저는 우스갯소리로 "몹쓸 땅"때문에 떵떵거리며 으스대는 것보다 법복 앞에서 땅땅땅 내리치는 소리를 듣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제가 늘 하는 말은 돈 싸매 들고 무덤가지 않는다고 했는데 왜들 재산에 욕심이 많고 재물을 움켜쥐는 사람이 많은지 모르겠네요.

그나저나 형님 "재산이 얼마나 되냐"라고 돌직구를 던지자 그저 웃고 마는 형님입니다?.

형님이 솔직히 부럽습니다.

직장을 다니면서 조치원에 아파트 한 채와 양평 <420평>에 2층 전원주택을 짓고, 근방에 논과 밭이 또 있는 것 같아서요.

올해 아니면 내년까지는 조치원 살이를 정리하고 양평으로 이사할 거라며 귀띔을 줍니다.  

그래요,

이제는 형수님과 단둘이 연금 받아가며 알콩달콩 사세요.

형은 제가 죽어서도 잊지 못하니 가끔 양평으로 달려갈게요.

형님도 집 짓는데 마음고생이 너무 심했다.

단둘이 저녁 6시부터 11시까지 달리고 달리고....

불판만 달구면 됩니다.

신나는 토요일 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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