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김없이 일요일 새벽은 다가옵니다.
제가 있는 것은 아버지 보살핌입니다.

선산(문중) 묘소는 길을 내면서 가야 한다.

3,2,1기 조상묘는 비석을 세우거나 산소를 맘대로 손보면, 조상이 후손을 지키지(우환+불행))못한다는 친척어른의 말씀에 일절 묘비명을 쓰지 못한 채 이처럼 오랜 세월처럼, 산소풍경을 남긴다. 마치 두 패로 갈라진 것처럼, 말이다. 쓸쓸하게 비치는 (오직 믿음)인지 모르겠지만, 살아계신 어르신들의 말씀은 가히 역대급이며 조상급이다.

우리 일행은 외할아버지와 아버지 묘소만 벌초한다. 막내는 특별히 아버지 묘라고 신경 쓰면서 섬세하게 예초기를 사용한다. ㅎ

다 모여서 벌초하려면 (25기 이상) 묘를 손봐야 한다. 방만하다 못해 방대하다. (장흥에 있는 산소포함)
번거 룸을 없애기 위해 2팀으로 나눠 추석 전까지 벌초를 마무리해야 한다.

「우리 아버지 묘」 막내와 나는 음복을 했다. 나는 각별히 아버지와 추억이 많다. (제목~[아버지 아버지 우리 아버지]~참고)

매장문화가 뭐라고? 가묘 2기가 을쓰년스럽다.
벌초를 끝내고 큰집의 큰형에게 말씀드렸다. 우리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50년입니다. 벌초모임이 두려운 게 아니라, 이제 아버지를 다른 세상으로 보내드려야겠습니다. 파묘하여 저 멀리 날려버리든지, 납골당에 계시는 엄마 곁으로 모시든지 할 겁니다. 이처럼 돌직구를 날리자, 당황한 빛이 역력한 큰집 큰형은 단호하게 말씀하신다.
이놈들아! 우리는 씨족사회를 살아가는 세대야~ 조상의 은덕 하심에 후손들이 잘 살아가며, 무엇보다 벌초문화를 없애면 그나마 친인척은 서로 모른 척, 등(외면)을 지고 살게 될 거야! 연세가 70이 넘는 큰집 형의 눈가에 이슬이 맺힌다. 그러면서 형님께서 말씀을 이어나간다. 나도 생각이 바꿔졌다. 매장문화보다 화장문화를 선호한다
곧 조그만 땅을 사서 (납골당식) 산소를 꾸밀 생각이다. 거기에는 큰아버지와 큰엄마, 그리고 작은아버지만 모실 것이다. 햐~또 일을 벌이시네, 우리 작은집 식구들은 화장해서 엄마 곁에 영원히 안식한다고 약속했는데 또 "따로 묘를 쓰고 한 곳으로 모여라니" 할 말이 많았지만 병마와 사투를 벌이는 큰 형님에게 차마 대들지 못하고 세종으로 발길을 돌렸다.
세종시로 향하는 막내와 나는 한동안 말이 없고, 차 안은 정적이 흐르는데, 마침 막내가 내게 묻는다. 형! 아까, 큰 집형 말씀대로 이행하고 따를 거야? 아니, 암중모색해야지, 그게 뭔데, 엄마가 아버지를 많이 그리워했잖아! 울 엄마가 세종은하수공원에 계신다고, 거기에 방점을 찍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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