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내 입맛이 변한 거야? 뭐야

헤게모니&술푼세상 2020. 5. 23. 0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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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길 거래처를 가게 되면 새벽부터 분주하게 움직인다. 멀리 갈수록 배속을 든든히 채우고 집을 나서야 하는데 늘 그래 왔던 것처럼 아침밥을 건너뛰고 차의 시동을 건다. 집사람이 새벽부터 일어나 부엌에서 달그락 거리며 음식 하는 것도 싫고 본인이 손수 밥상을 차려 먹는 것도 만사가 귀찮다.

밥 안먹고 살 수 없나? 

장거리 운전을 뛰면서 마지못해 챙기는 것이 있다면 생수 500리터짜리 PT병이다. 오늘은 경상북도 합천에 다녀와야 한다. 주요 거래처 인지라, 눈감고도 가는 길이지만 요즘은 나이도 있고 해서 몇 배로 신경을 쓰인다. 가다가 졸음이 쏟아지면 어떡하나/ 강한 봄바람 때문에 차가 몹시 흔들린다/ 이렇게 가다가는 3시간은 걸리겠네/ 말이 씨가 되었는지 물병을 세 번 나누어 마시고 나니 3시간여 만에 도착지 합천이 보인다.

16년 동안 사업을 하면서 느끼는 건데 경상도 사람들은 한결같이 친절하고 자상하다. 너무 고생했다며 봉지 커피라도 드시고 가시라는 멘트를 빼놓지 않고 점심시간 때가 되면 같이 숟가락을 들자고 권유한다.

무엇보다 지금까지 단 한번도 제품 수금에 있어 속을 썩어본 적이 없고 제때 그 날짜에 정확히 입금해준다. 정직하고 온화한 경상도 사장님들, 덕분에 전라도 출신 헤게모니는 답답한 충청도에서 바득바득 버티며 공장을 <빵빵> 돌리는지 모르겠다. 

이른 오전에 제품을 내려주고 세종으로 되돌아오는데 다른 때와 다르게 배가 꼬르륵 신호를 보낸다. 그러고 보니 새벽에 설친잠이었고 물 세 모금만 먹고 운전에 초집중했으니, 배안에 무엇을 채우긴 채워야겠다. 잠시 차를 세운 곳이 김천 소년원교도소 근처 였다. 갓길에 분식집이 있는데 지나치다 보면 가게가 깨끗했고 즉석 전통 김밥이 맛있다는 소문이 났기 때문이었다. 

여기서 잠깐 고백하건데, 술푼세상은 아무리 배가 고파도 사람이 붐비고 복잡한 휴게소와 식당에서 절대로 혼자서 식사를 하지 않는다. 무슨 말 못 할 트라우마가 있어서가 아니라 성격 탓이라고 변명해보자. 당연히 분식집에서도 자리에 앉지 않고 김밥 2줄과 쫄면 한 그릇을 포장 주문했다. 명성 그대로 가게 안은 손님들로 꽉 차 있고 여주인장과 종업원 한 분은 눈코 뜰 수없을 만큼 바쁘다.

그런데 주_정차 딱지를 의식하며 약 30여분 동안 분식집 풍경을 지켜봤는데, "이건 정말 아니다"라고 싶을 정도로 음식 파는 구조와 음식 요리 만드는 과정이 너무 불청결하고 주먹구구식이다. 가게의 넓은 규모에 비해 다닥 붙어있는 식탁과 의자가 눈에 거슬렸고 무엇보다 김밥을 돌돌 말으시는 주인장께서 그 흔한 마스크를 쓰지도 않고 연신 줄지어 선 앞사람과 말을 걸며 침방울을 튕기고 있었다.


아무리 (코로나19)전염병이 잠잠해졌다고 하지만, 때가 때인 만큼, 서로가 위생청결에 더 신경을 써야 하지 않겠나?  마스크를 단단히 쓰며 포장 주문을 했던 사내가 민망할 정도다. 기분 상한 사내는 주인장을 향해 심한 지적과 질책을 하고 싶었지만 끝내 입을 열지 않았다. (뭔가 몇% 프로 부족한 사람으로 보였다) 

사내는 바로 김밥과 쫄면을 차에 실고 경부선 추풍령 쉼터에서 음식꾸러미를 헤치며 잠깐 긴 호흡을 가다듬고 쫄면 한 젓가락을 입에 넣었는데 이것은 쫄면에서 풍기는 특유의 별미가 아니다. 새콤_달콤은커녕 초고추장에 그냥 버무린 맛이다. 그래도 김밥 맛은 괜찮겠지? 김밥 한 조각을 음미하니, 단무지, 콩나물, 시금치, 세 가지의 짠맛으로 범벅이다. 도저히 먹을 수가 없어 음식물을 비닐봉지에 담고 곧장 공장으로 돌아왔다.

밥 안먹고 알약 하나로 해결하면 안 돼?

전 세계의 과학자들은 뭐하는가? 식사대용 캡슐을 만들라고! 공장 밭에다 김밥과 쫄면을 묻으며 실없는 소리를 한없이 읊조렸다. 누가 그 분식집을 맛집이라고 했었어! 어제와 오늘은 입맛, 밥맛, 그 맛이 없다. 이상하다. 왜 분식집에 손님들은 바쁜 손놀림으로 음식을 후다닥 먹었을까?

지금 이 시간에도 미스터리이고 전대미문하고 아리송해하다.

 

고령 lc 빠져나와 40분 달리면 합천

 

경부고도속도로 상행선

 

 

여기서 꼭 쉬어간다.

 

무슨 맛있는지 모르겠다.

내 입맛이 잘못된 거야? 뭐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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