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글들을 읽고 친한 친구가 말한다 가정 있고 자식도 있고 이젠 먹고살만한 위치에 서 있는데 너는 뭐가 아쉬워서 툭하면 여자 타령 <편력. 욕정>이냐 라고 핀잔을 준 적이 있다 하기사 누가 지금 내속 끓는 심정을 안단 말인가! 그래서 이 말 만은 빼놓지 않고 한다 이 자식아 늙으면 늙을수록 여자를 밝히는 법이야 그래 너는 잘나서 팔도에 각각 애첩 하나씩 거느리고 사니 이 썩을 놈아 우린 진담인지 농담인지 말이 거칠다 기실 나는 그렇다 이때껏 세상 살아오면서 내주변에는 남자보다 여자가 많았던 것은 사실이다 그것은 어떤 관계이든 간에 여복이 많았다는 것이다 물론 나도 남들과 별반 다르지 않게 어떤 모임을 통해서 왕성한 활동을 하면서 각양각색의 여자들을 만났고 인연을 맺어왔다 내가 여자를 애원하고 매달리고 하는그런 상황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여자들이 내 앞에 모성적으로 다가왔고 솔직히 나는 진심을 다하여 인간적으로 대했고 무엇보다 이성적으로 바른 판단을 하는 점들이 오랫동안 친교와 만남을 이어오지 않았나 생각한다 지금은 대부분 여자 친구들은 세월과 함께 내 곁을 떠나버렸고 간간히 몇 사람과는 안부를 주고받는 정도이다 모두들 어느 하늘 아래서 가정을 이루고 행복하게 잘 살고 있으리라 소망을 해볼 뿐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제 와서 내가 알고 지냈던 여성들을 놓고ㅡ 내가 좋은 사람이었다 ,내가 나쁜 사람이었다,고 내 스스로 구분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것은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그 여성들의 각자의 판단과 몫 일 것이다 내가 왜 이렇게 변명처럼 긴 사족을 늘어뜨리는 이유는 어제 낮 점심시간에 있었던 일 때문이다 일요일 모처럼 가족과 함께. 집 근처에 있는 식당을 찾았다 갈비와 냉면을 먹기 위해서다 ㅡ계절답다ㅡ 식당 안은 빼곡한 손님들로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었다 다행히 두 곳 정도 빈자리가 있어 내 가족들이 앉으려는 순간 나는 나도 모르게 어! 소리와 함께 앞 테이블에서도 어머! 한 여인의 단말마적인 짧은 외마디 소리가 서로 동시에 터져 나오고 있었다 그러나 이내 서로 짧은 목례 인사를 나눌 뿐 시선은 다른 곳에 있었다 그 이유는 그쪽도 내쪽도 가족들이 동행하고 있었기 때문이었고 말 못 할 사연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참으로 난감했다 하필 여기서 k여인을 만날 수 있단 말인가 차마 발길을 돌릴 수는 없었고 예의상 등을 돌리고 식탁에 앉을 수도 없었다 나는 이내 정신을 차리고 정면으로 그녀와 마주 보는 자세로 음식을 시켰다 자꾸 가족들은 저 사람이 누구냐고 궁금해한다 아내의 직감인가? 혹시 당신 옛날 애인이야 나는 내 마음을 들킨 것처럼 내속이 따끔하고 뜨끔 하다사실은 이렇다 15년전 쯤 나는 소위 음악 지휘법을 배우기 위해 대전에 있는 모대학 사회교육원을 다닌 적이 있었다 그때 k양 그녀도 갓 대학을 졸업한 상태로.. 우선 짬짬이 지휘를 배우는 중이었다 비록 나이 차이가 많았지만 같은 동료로서 하루 교육을 마치면 너나 할 것 없이 아쉬움에 지쳐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서로들 많은 얘기를 나누었고 늘 뒤풀이가 뒤 따르고 있었다 그만큼 우리들은 열정 몾지않게 단합이 잘되었다 당시 교육생들은 쟁쟁한 엘리트 출신들로, 사업가. 학생, 교회 전도사, 교수, 학교 교사 등등 감히 나는 명함을 내 밀수 없었다 내 학벌은 고사하고 내가 음악에 대해서 무얼 아나 그것도 편법 <타인, 강요>으로 고등교육을 나왔다고 속이고 호랑이 굴에 들어간 내 심정을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지휘법을 이수를 했는지 정말 모를 일이다 누구보다 k양의 각별한 도움이 컸다고 말할 수 있다 음악을 전공한자답게 이론과 실기에 해박한 지식이 있었다
나는 자연스럽게 k양을 의지 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었고 갈수록 나는 K양과 친해지려고 열심히 음악공부에 매진했다 지성이면 감천일까? 그녀는 내게 심도 있는 음악을 가르쳐 주었고 서로 스스럼없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만큼 친해져 갔다 때론 고상한 ㅡ인생살이와 함께ㅡ속마음을 터놓고 지낼 수 있을 만큼 가까운 사이가 되고 있었다 시간이 갈수록 우리에겐 따뜻하고 진심 어린 정이 오고 가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녀가 있었기에 음악을 하는 쏠쏠한 재미가 생겨났고 나는 그녀를 위해 어떻게든 보답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늘 골몰에 휩싸였다 어떻게 k양을 재미있게 해 줄 수 없을까, 하는 생각으로.. 유머집을 읽고 재미있는 애기들을 모아 들려주곤 했다 그녀 말고도 30여 명의 가까운 교육생들도 내 위트와 유머에 박장대소가 끊이질 않았다.. 정말이지 나는 유머스럽고. 괴기한 행동으로 사람들을 쓰러지게 하는 재주가 있었던 모양이다 나중에는 음악 학장님도 내가 모임에 꼭 참석하기만을 기다릴 정도 었으니까, 말이다 암튼 k양을 통해 나는 재미있는 음악을 알게 되었고 비록 열한 살 나이 차이임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모르게 동생처럼 친구처럼 때론 연인처럼.. 3년을 넘게 만남을 이어갔고 인연을 쌓아 갔던 것이다 ㅡ동생ㅡ 아저씨ㅡ 호칭으로 말이다 그러나 그녀도 나름에 인생이 있는 법 어느 날 그녀는 내 곁을 떠나 대구가 고향인 연구원과 짝 <배필>을 맺었다 직접 나는 대구 어느 예식장을 찾아 진심으로 행복을 빌어주기까지 했다 아무튼 나는 지난날의 k양과의 사랑과 교제?을.. 잠깐 샛길이었고 한쪽 눈을 팔았다고 이렇게 변명하고 싶지 않다ㅡ 더욱이 이것은 바람이다ㅡ 소위 불륜이다ㅡ라고 말하고 싶지도 않다 그럴 가능성이 열려있고 또한 그럴 수 있는 게 인생 아닌가 하는 선문답을 해볼 뿐이다
잠시 나는 고개를 들어 그녀를 힐끔 쳐다보았다 십여 년이 넘는 세월인데도 그녀의 얼굴은 그다지 변하지 않고 예전 모습 그대로다 미소가 아름다운 그녀였는데 지금도 여전하다 나와 똑같은 아들, 딸 남매인 것 같다 가족들이 다 행복해 보인다 바라볼수록 보기가 좋다.. 그래 다 옛날 추억의 여인이고 서로 각자 가정을 지키며 살고 있지 않는가! 이제 와서 무엇을 생각하고 무슨 말을 한다 해서 무슨 소용이고 무슨 이득이 있단 말인가? 그녀 가족들이 먼저 일어서는 걸 보며 나는 이내 고개를 들어 그녀를 향해 눈길을 주어 본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말한다 k 동생아 어디에 있든 행복하게 잘 살아라 이렇게 마음속으론 빌고 빌었지만,, 솔직히 내 마음은 복잡다단하고 심란한 것은 부인할 수가 없었다 나는 대낮부터 또 소맥이다 마누라 왈 ㅡ그동안 보고 싶어겠지ㅡㅎㅎㅡ뭘 안다고 지레짐작으로 염장 소리를 해댄다 한참 후 전혀 생각지도 못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카운터에서 음식값을 계산하려는데 셈이 되어 있었다 십만 원을 놓고 갔다는 것이다 식당 주인장은 눈치 한번 빠르다 내게 살짝 잔돈과 쪽지 한 장을 건넨다 그녀의 메모였다 아저씨 가족들이 행복하게 보여요 계산은 내가.. 전화번호예요 010 xxxx ㅡxxxx 이게 무슨 조화란 말인가/ 이건 무슨 의미일까/ 무슨 의도를 주는 걸까/ 그냥 안부전화라도 하라는 얘긴가/ 집에 돌아와서 나는 오후 내내 손이 잡히질 않아 무얼 하나 집중을 하지 못했다 어젯밤에는 나는 (전전방축 )이리 뒤척 저리 뒤 척하는 불면의 밤이 되었다 새벽녘 여자축구 <대한민국-멕시코> 경기가 없었다면 아마 고통스러운 밤이 되었을 것이다 잠 한숨을 자지 못하고 꼬박 날밤을 새며 공장 출근을 했다 정말로 일손이 안 잡힌다 그녀의 전화번호가 저장된 내 휴대폰을 자꾸 만지작 거릴 뿐이다 끝내 전화를 걸지 못했지만.. 왜 이렇까 왜 그렇까? 지금 나는 복잡하고 묘한 이성과 감정이란 괴물들이 한데 어우러져 있고 헝크러져 있는 것 같다 마치 길 <방향타>를 잃은 채 자꾸 어디로 향해 한 발짝 두 발짝 나아가고 있는 느낌이 든다 k 그녀를 향한 아쉬움인가? 미련인가ㅡ그리움과 애달음인가!
아 나는 또다시 탈출구를 꿈꾸며 끝없는 이탈을 동경하는 것 일까
하루종일 내 마음은 뒤숭숭하기만 하다
나의 방황의 끝은 언제란 말인가
참으로 내 인생은 똥구 빵구인 것 같다
....................그렇다 내 인생은 똥꾸빵구다..................
'나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여름휴가 일기(첫째날) (0) | 2010.08.05 |
---|---|
예쁜 동생에게.... (0) | 2010.07.28 |
타산지석을..(쌍둥이 형제) (0) | 2010.07.21 |
책임자의 자질... (0) | 2010.07.19 |
삶은 외상값... (0) | 2010.07.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