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화상을 안고 살아간다는 것은....

헤게모니&술푼세상 2010. 7. 8. 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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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선아! 사랑해

지선氏 사랑합니다

이지선ㅡ아름답고 해맑은 얼굴로 교회에서 성가곡을 부르는 모습은 천진난만한 표정이다

그러나 연세대학교 유아교육과 재직 중 어느 날 오빠 차를 타고 집으로 가던 중 그만 교통사고를 당하게 된다

안타깝게도 차는 불길에 힙싸이고 지선 씨는 온몸에 전신 55% 화상을 입고 사경을 헤맨다

하지만 그녀는 삶과 죽음의 문턱에서도 절망하지 않고 희망을 안은채 끝까지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달리고 달린다

가끔 방송과 책을 통해 그녀의 소식을 듣곤 했는데 벌써 사고가 난지도 10년의 세월이 흘렸다니 세월은 참 빠르기도 하다

며칠 전 나는 아침방송에서 그녀의 눈물겨운 삶의 스토리를 다시 한번 듣게 되었다

그 많은 역경과 고난 속에서도 당당히 재활학, 사화복지, 두 가지 석사의 공부를 마쳤고 이내 박사 취득을 향해 도전 중이란다

예전보다 많이 밝아지고 당당한 모습이 보기 좋다 그보다는 얼굴이 많이 예뻐졌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서른하나 (31)의 나이만큼이나 얼굴 그리고 전신에 성형 수술을 해야 했고 앞으로도 많은 수술의 과정이 남았다는 사실에 내 마음이 짠하다

사회자가 마지막으로 묻는다

지선 씨! 지금 만약 10년 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어떻게 하시겠어요

그녀는 단호하게 말한다.

지금 이대로가 좋아요

해탈의 경지에 이른 것 같다

과연 그녀의 진짜 속마음 일까? 내 마음은 한없이 무겁다

나는 화상을 입은 사람의 심정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그것은 나의 일이기도 하고 동병상련의 아픔이기도 하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그날

 32년 전 1977년 칠월 팔일 겨우 17살 나는 제2의 인생의 길을 걸어야만 했다

 

우르릉 쾅, 쾅  번쩍

내가 근무하던 제과점에서 일어난 가스폭발 화재사고였다

순식간에 현장은 아수라장이 되었고 나는 유감스럽게 현장 한가운데 주인공이었다

온몸에 불길이 휘감는 느낌. 양손이 떨어져 가는 느낌. 동물이 타 죽어갈 때 나는 냄새와  여기저기서 아우성하는 사람들의 속삭임, 나는 서울 무교동 큰 도로변에 덩그러니 버려진 채 온몸을 뒹굴며 구조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이내 의식을 잃었다

당시 신문과 방송에 대대적으로 보도될 만큼 큰 화재사고라 말할 수 있다 방송을 듣고 잠시 뿔뿔이 흩어졌던 가족들이 하나둘씩 병원으로 달려왔을 정도였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나는 일주일 내내 의식을 찾지 못하고 중환자실에서 죽음의 사선을 오르락내리락하고 있었다 화상부위는 양손 말고는 크지 않았지만 폐 속으로 흡입된 이산화탄소량은 치사율이 넘고 있었던 것이다

일주일 만에 깨어났을 때 그때 그 심정은 어떤 표현으로 답하기는 어려울 거다 모든 것이 변해 있었다 나는 엄마손을 붙들고 웁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진심으로 기도합니다

하나님! 원망하지 않겠습니다

제발 절 하늘나라로 데려가 주세요

정말이지 어린 나이에 마음을 굳게 다지며 새로운 환경을 적응해야 한다는 것은 쉽지가 않았다

아침저녁으로 찾아오는 화상부위 치료의 아픔은 도살장에 끌려간 소처럼 여간 고통스러웠고 통곡소리었다

2차 감염을 막기 위하여 수세미로 화상 손 부위를 인정사정없이 밀어 씻겨낼 때 그리고 진물에 메말라 붙어버린 거즈를 떼었다 붙었다

할 때마다 내 비명소리는 참담한 고문이었고 벼랑 끝 지옥이었다

차라리 한쪽 다리가 잘라져 버린 것이 낫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화상치료는 하루하루 죽음에 사투였다

다행히 화상전문 한강성심병원으로 옮겨 집중치료를 받는 결과 차츰 상처부위는 호전되어 갔고 폐 속에 스며든 유독성 <화기>도 빠르게 치료되었다

비록 목숨은 건졌지만 갈수록 쌓여만 가는 외적 그리고, 마음의 병은 큰 짐으로 다가옴을 부인할 수 없었다

심한 3도의 <손> 화상 속에서도 열 손가락 중, 그래도 한 개라도 떨어져 나가지 않고 온전히 손가락을 쓸 수 있다는 의사 선생님의 말씀에 안심과 위로가 되기도 했지만 이렇게 흉한 손을 부여잡고 어떻게 세상을 살아가야 한단 말인가!

실의와 낙담 속에  끊임없는 불안 속에 나는 남몰래 눈물 흐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무려 2개월 동안 병실에서 꼼짝없이 누워 날마다 지치고 힘든 병원생활을 해야 했다

그나마 인자하신 내 주치의 의사 선생님과 나이팅게일의 정신을 가진 간호사분을 만난 것은 네겐 너무나 감사할 행운이라 할 수 있다

이름도 기억하는 최영순 간호사의 지극 정성 어린 간호와 보호는 나는 죽어서도 잊지 못할 은혜고 고마운 사람이다

보호자도 없는 병실에 내 병 수발을 손수 감내하였고 항상 인내와 용기 그리고 희망을 불어넣어주었다

 

살아가면서 책을 놓지 말 것

손의 재활을 위해서라도 기타를 배울 것

손이 부끄럽고 창피하다고 숨기지 말 것

무슨 일이든  포기하지 말고 당당히 맞설 것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간호사 누나 말처럼 나는 후회 없는 인생을 살아왔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화상으로 얼룩진 나의 손은  때론 말 못 할 서러움과 격한 절망감을 주었던 버거운 삶이 었다고 말할 수 있다

나의 젊음과 청춘은 저 멀리 다 날아가 버렸기 때문이다

이제 와서 모든 것을 다 쏟아놓고 살 순 없지만 직접 겪은 경험담 한 가지를 꼭 말하고 싶다

몇 해 전 어느 여름 길을 걷고 있는데 한 무리 사람들 속에서 어떤 아주머니가 그것도 내 귀에 들리게 말을 내 뺕는다

저 아저씨! 손 좀 봐!

화상을 입었나 봐!

딱해!

불쌍해!

이런 말은 지금까지 내 마누라도 내 자식들도 내 친구들도 무관심 밖으로 한 번도 물어보거나 들은 적도 없었다

아주머니가 뭔데 그것도 큰소리로 망신을 준단 말인가! 

 그냥 지나칠 수도 있었지만 그날따라 비참한 생각이 들었다

나는 발걸음을 돌려 아주머니께  다가선다

아줌마! 내 손이 아주머니께 피해를 주었습니까?

그래.. 피해 안주려고 몇 차례 수술한 것이 이 정도네요

당신 때문에 내가 긴팔을 입는 겁니다

흉하고 징그럽다고 손가락질할까 봐

아주머니 얼굴은 흙빛이 되어 어쩔 줄 몰라 내 시선을 외면한다

내가 너무 예민해서 이러는 것 아닙니다

나보다 더한 사람 장애를 가진 사람들한테는 이러지 마십시오

 아주머니와 실랑이가 있고 난 후

하도 답답하고 억울해서.. 이왕지사 나도 국가혜택을 받고자 서류를 준비하여 병원을 찾았다

나는 이런 모습입니다

장애등급을 해주십시오

의사 선생님 말씀, 당신이 장애인이라면 대한민국 사람 어중이떠중이 다 장애인입니다

팔, 골절만 돼도 장애등급이 되는데 나는 왜 안된단 말입니까? 항의도 해봤지만 아직까지 나는 장애등급이라는 국가의 부름을 받지 못하여 이렇게 어엉부엉 살아가고 있는 중이다

비장애인들에게 부탁의 말을 한다

알 수 없는 게 인생인 것처럼 우리는 누구나 미래의 장애를 안고 산다고 말할 수 있다

사람의 외모를 보지 말고 마음을 읽으라 하듯이 장애인을 보면 지나친 시선과 관심을 갖지 말라는 것이다

장애인에 향한 오지랖은 결코 옳지 않다

자신의 부메랑이 될 수 있다

장애인들을 그만 제발 조용히 놔두라

미국 일본 서유렵 등은 왜! 장애인들이 살아가는 데 있어 천국인가

장애인의 최우선 복지를 꼽을 수 있지만 서로 함께 어울리는 습관 그리고  양보와 배려 속에 진실된 커뮤니케이션 있다는 사실이다

이지선 씨 말 중에 미국 일본에서는 장애인을 보면 단 2초도 쳐다보지 않습니다

그 나라의 국민성을 알 것 같다

대한민국에서는 솔직히 비장애인이나 장애인이나 오십 보 백보다

제발 무시하지 마라! 차별하지 말라!

아무튼 나는 화상 입은 손을 부여잡고 나보다 더 불쌍한 사람이 있다 해서 용기 하나로 딱 오십 년을 살아왔다

눈물 속에 피는 꽃처럼 살아온 내 삶

 

눈물 덧없이 영문을 모르게 흐르는 눈물 

어느 거룩하고 깊은 절망에서 비롯한 눈물이기에 가슴에 솟아올라 눈에 고인다

                  <테니슨>

지금   살아 있는 게 행복일까  

그래  희망의 끈은 놓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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