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짜파구리와 우리 양파..

헤게모니&술푼세상 2023. 10. 17. 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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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공장일이 밀려 이른 아침부터 내 공장의 주요 "품목" 맨홀소켓을 작업하는데, 다른 날과 다르게 힘이 달리고 피곤이 밀려온다.

나이는 속일 수 없는 것보다 평상시보다 하루 물량을 넘게 많은 양을 처리했다.

그것도 아침과 점심은 건너뛰고 구멍을 뚫는 탬핑기에 집중하다 보니 왼쪽 다섯 손가락에 이상 징후가 나타난다.

손가락에는 /엄지/건지/중지/약지/소지/있다는데, 자꾸 약지와 소지에서 원인 모를 마비증세가 계속된다.  

임시방편으로 수지침으로 무지막지하게 피를 뽑아내지만 별 효과도 없고, 도리어 약지와 소지가 달라붙여 왼쪽 손을 꼼짝 못 하게 만든다.

중풍에 전조증인가?

눈떨림이 가중된다.

덜컥 겁이 났지만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마음을 내려놓는데, 어느 거래처에서 맨홀소켓 <사이즈>250호 8개만 화물 <택배>로 보내 줄 수가 없냐고 사정 아닌 주문을 한다.

맨홀소켓은 폭과 높이가 정확하며 넓이와 길이는 빈틈없기 때문에 정량과 규격 또한 완벽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국에 통용되는 정품 소켓을 선반밀링으로 깎아서 최대한 <size> 크기를 넓혀 달라는 요구다.

메인 <관급> 회사면 그러려니 하며 넘어가겠는데, 잊혀가는 민간기업에서 그것도 달랑 8개를 정밀작업해서 보내달라고 하니, 화딱지와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내 공장이 같잖은 구멍가게냐?  

나는 결코 배부른 소리가 아니다.

거래를 끊으면 끊었지, 앞으로는 이런 주문은 받지도 않고 결코 응대하지 않겠다.

귀하! "거래처는 이제는 마지막이다"라며 확고한 결정을 내리고, 타공장에서 밀링작업을 의뢰했다.

이처럼 스스로 마음을 다스리고. 편안한 자세를 견지하는데, 왜 그리 왼쪽 손가락 2개는 딱딱해지고 굳어져 가는가?  

일단 약국에 찾아 약사에게 자초지종 증상을 얘기했더니 별 뾰족한 약이 없으니, 일단 무리하게 일하지 마시고 단백질이 많은 육류음식을 잘 먹고 충분한 수면을 취하라는 것이다.  

원기부족이기 때문에 잘 먹지 못하고 피곤에 쌓이면 신체구조에 흔히 나타나는 현상이란다.

젊은 약사의 말에 걱정을 떨쳐 버리고 집으로 돌아왔지만 새끼손가락의 마비증상은 계속된다.

마침내 주변에 사는 친구가 형님과 함께 통닭에 시원한 맥주 한잔 하자며 전화를 걸어온다.

술을 먹고 당구 한게임 치면 손 마비증상이 나아지려나?

그러나 손떨림과 눈떨림이 계속되고 마지못해, 나는 자진해서 당구내기 게임을 멈춰야 했다.


내가 꼴등 했으니 2차 술을 사주겠다며 술집을 찾았지만, 몸 상태가 최악이라서 금방 일어섰다.


병원 찾기는 이미 늦은 시간이고, 그나마 몸이 아플수록 안정을 취하는 곳은 집구석밖에 없다.


마침 친구는 바로 본인 집에 들어가지 않고 일부러 우리 집에서 넉넉히 머무는 시간을 가져준다.


배려를 베푼다는 것은 의리가 있다는 거다.  


그러면서 나를 쳐다보며 오늘 당신은 밥 한 끼도 못 먹었으니, 짜파구리를 맛있게 끓어준다고 한다.


한식자격증이 있고 식당사업으로 크게 성공한 친구라, 일단 믿고 먹어 보자.


요리에 필요한 너구리와 짜파게티를 대령하고 채소류 대파/양파와 돼지목살과 올리브 식용유를 내밀어주니, 이 집에는 없는 게 없다며 기분이 좋단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세상에 태어나 이렇게 맛있는 짜파구리는 처음 먹어본다.

넘넘 맛있다. 또 끓어줘


싹싹 비비니 떼깔도 좋고...


식감이 간짜장 냄새를 풍기며 이상야릇하게 특이한 풍미가 느껴진다.


허겁지겁 짜파구리 한 봉지 반의 양을 먹고 난 후, 양파를 끌어안아 공중에 들어 올렸다.


이제부터, 양파 <반려견>와 단둘이 1년여 동안 집지킴이로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양파에게 시선을 떼지 못하고 손꿈놀이를 하는데 나도 모르게 눈떨림과 손마비증세가 싹 가신다.


친구는 다행이다, 싶었는지 집으로 돌아가고 나는 양파를 위해 좀 더 함께 놀아주는 시간을 더하니 몸에 어떠한 적신호가 오지 않는다.


양파를 끌어안고 방금 아침을 맞이했는데 몸상태가 뿌듯하고 상쾌하다.


이렇게 온전한 몸으로 돌아온 것은 친구가 끓어준 짜파구리의 정성이 아닐까?


아마도 양파가 밤새도록 내 왼쪽 손밑에서 잠을 청하고 친밀한 교감을 나눈 점이 크지 않을까?


아무래도 나는 개보다 못한 인간임은 맞는 것 같다.ㅎㅎ


오늘 하루는 공장에 나가지 않고 집에서 양파와 놀기다.

https://youtu.be/ErfM0 aQyh5 s? si=VMsvIeWPKMRSkvKT


어젯밤 늦게 황치환 <친구> 대표가 보내 준 낙엽 따라가 버린 사랑...

(색소폰연주)


내가 엄마생각에 즐겨 부르는 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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